[백일출가]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ㅡ19기 백일출가 이정화

백일출가 | 2017.02.26 14:54 | 조회 323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이정화(백일출가 19기·대전 청년 정토회)

 

“멈춤의 지혜.”

 


 

 

 

 

일상의 삶을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보고 다시 나를 알게 된 100일 동안의 경험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딱 이 말이 아닌가 싶다_ 멈춤의 지혜.

 

대학 진학을 시작으로 목표 달성을 외치며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로 두 번의 직장생활... 나 스스로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가혹하리만큼 나를 몰아치며 살아왔다. 결국 마음 속 괴로움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입사한 직장에서 비전(vision)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며 자꾸만 마음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한 채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며 지내왔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불안과 초조는 절정을 찍었고, 충동 조절은 되지 않고 의미없는 숨쉬기만 반복되는 듯했다. 저 밑, 기억 속에 뭍어두었던 지나간 힘든 시간들이 계속 수면위로 떠오르고 내 시간은 과거로만, 과거로만 가서 그 과거 속에 멈춰 있는 듯했다. 괴롭다. 안되겠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라도 쉬자, 지금 쉬지 않으면 더 이상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 삶에서 잠깐 ‘멈추기’로 했다.

 

출가자로서의 삶은 나에게 단순함 그 자체로 너무나 좋았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하고, 복잡하게 계산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생활. 그저 그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마음이 좁아졌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그 동안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몰아치면서 살아 왔던 걸까. 지난 시간에 대해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입재 후 얼마 되지 않아 유수 스님과 함께했던 ‘무아의 장’을 하면서 나는 충격에 휩싸였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진짜 나의 참모습’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나’에 집착하고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인정하면 되는데 그걸 부정하고, 심지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음들마저 ‘이러면 안돼, 저러면 안돼’하며 외면해왔다는 것.. 가장 가까운 내가 내 마음을 부정하고 외면해 왔다는 것을 알고 나니,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나에게 진정한 휴식이 필요했구나. 나를 알아주고 나를 이해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이번에는 그래도 내 마음에 필요한 휴식을 알아주어 이렇게 쉴 수 있어 정말 다행이구나.’ 그런 안도감이 들었다. 100일의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이 점점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옹졸한 나, 째째한 나,, 이런 나를 만나는 것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내 모습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니 마음이 평화롭기까지 했다.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사는 건 이런 거구나, 나 스스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니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눔의 장에서였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을 뿐’이며, 과거는 현재의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으니 현재에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덕생 법사님의 한마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늘 현재에 살고 있지 않고 과거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이 그 때 그 사건때문에, 그 때 부모님이 이렇게 반응해서라고, 늘 과거 속으로 들어가 현재의 불편함을 원인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 핑계였구나. 복잡하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정리 되는 것 같았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를 알아차리고 돌이키면서 순간순간 살아가면 되는구나.

 

1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많은 일들을 경험해 보았다. 밥을 만들고 국을 만들고, 배추를 심고, 잡초를 베고... 몸이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더 없이 행복했던 건 그저 지금까지 책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했던 것들을 직접 내가 체험하며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쉼 없이 이어왔던 내 시간에 쉼표 하나를 찍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나를 알게 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나도 넘어질 수도 있구나, 넘어지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서면 되는구나. 백일출가 이후 다시 계약직이지만 하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이제는 마지막이야, 하면서 지원했던 기관의 정규직 시험에 1차 합격을 했다.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본 시간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이 시간들이 나에게 찾아올 수 있었을까. 100일 동안의 멈춤으로 지금 나는 다시 또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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