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출가] 경계에서 나를 보다 - 27기 이정원

백일출가 | 2017.02.26 15:31 | 조회 397
 경계에서 나를 보다
백일출가 27기 -이정원
 
눈물분별
회향을 앞둔 지금백일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백일출가 하며 알아차린다는 자기 꼬락서니나는 내 꼬락서니의 그림자라도 보았을까몇 가지 경계 속에서 나를 보긴 한 것 같다만 배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새벽 3시까지 힘겹게 절을 하면서도 별다른 번뇌는 없었다
만 배보다 더한 번뇌를 일으킨 첫 번째 경계는 콩이었다나는 어릴 때부터 콩밥을 싫어했다그런데 이곳에서는 검은 콩노란 콩심지어 땅콩까지 매 끼니 알알이 박혀 나왔다콩밥이 아닌 날은 김치 포함 3찬 중 하나가 콩장이었다콩밥과 콩장은싫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내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주걱을 들고 망설이는 시간이 10, 5, 3초로 줄어들고그래 단백질이다하고 필수영양소로 여겨 먹고 있다먹다 보니 맛있을 때도 있고.
두 번째 경계는 눈물이다절하다가 울고나누기하다 울고도반들 얘기 듣다 울고걷다가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별거 아닌 얘기하면서 왜 우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 이유는 나도 몰랐다이야기하려고 입을 떼면 갑자기 가슴속에 파도가 쳤다눈물을 참으려고 주먹을 쥐어보기도 하고머리를 때려보기도 했다순간 울컥하며 올라오는 마음에 나조차도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법사님께서는 그렇게 울음이 나면 3년은 울 수 있어하셨다남 앞에서는커녕 혼자서도 잘 울지 못했는데이곳에서 주체 못 하고 울면서 이유는 모르지만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울어도 괜찮아아무 일도 없네’ 같은.
세 번째 경계는 분별이었다밖에서도 시비 분별은 많았다백일출가 하면서는 티 내지 말고 잘 살펴봐야지했는데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4시간 함께 살아가는 도반들은 때론 친구였다가 선생님이었다가 마장이었다저렇게 이기적이라니잔머리 지존개념이 없는 건가이렇게 끊임없이 판단을 하고 있었다어떤 경우는 한 사람에게 이렇게 까지 집착하며 싫은 마음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귀한 시간을 이렇게 소모하며 보내는 것에 짜증도 올라왔다싫어도 피해 갈 수 없는 같은 일정과 같은 공간에 살고 있었다그렇다면 해법을 찾을 수밖에여는 모임에서 분별이 날 때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질문하고내가 어떤 경우 분별을 내는지 살펴보았다사람이 아니라 행동과 상황에 집중해서 보았다어떤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좀 자주 할지도 몰라도 사람 자체가 온전히 싫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 사람이 가진 장점도 반복해서 생각해 보았다그래개념이 없는게 아니라순수한 거야.
도반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데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는가덜컹 하기도 했다상대에서 들이댔던 잣대는 백일출가 중반을 넘어서며 나 자신에게도 돌아왔다이렇게까지 치사해속이 바늘구멍만 하네잘난 것도 없이 분별이 작력하는구나.

단순하고 별거 아닌 일이 전부였던 행복의 시간
시원하게 트여 있어 좋았던 수련원의 모든 공간은 이제 감추고 숨을 데 없는 심판대 같은 느낌이었다내 본래 모습이 이랬나드러내 인정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 참으로 막막했다백일출가 막바지에 철퇴를 맞은 기분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물음이 남는다.
일체의장 때 행복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지향하지만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답을 했었다.그런데 생각해보니 호두과자를 다섯 개나 먹을 수 있어 즐거워하고아이스크림에 환호성을 질렀다라면에 만두를 넣어주고등반 때 초코바 한 개만 주어도잠을 한 시간 일찍 잘 수 있어도 왜 이렇게 잘해주냐며 입이 귀에 걸렸다.
날짜는 당연히 모르고요일은 법회를 듣는 수요일과 발우 수건 바꾸는 월요일목요일만 있는 생활.수요일에는 천 원을 보시하면서 만원의 느끼이 들었고월요일 · 목요일 점심은 종종 카레나 짜장이 나와 닦아 먹기에 깨어 있을 수 있었다단순하고 별거 아닌 일이 현재의 전부가 되어 진심으로 행복해지던 시간이었다.
백하루째로 시작하게 될 바깥 생활아마도 밖에 나가면 초 단위 분 단위로 쪼개 쓰던 신통력이 사라질지 모른다학습해라정진해라소임 해라잘 보라던 스승도 안내도 없다언제 출가한 적 있었냐며 100일을 날려버리고 살까봐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도 있다.
지금부터 100일이 중요하다는 법사님 말씀, 3년간 300배는 해야 한다는 회향수련의 과제에 마음을 다시 다져본다새벽 기상은 도량석 소리를 알람으로 쓰면 눈은 못 떠도 몸은 싹하고 일어나지지 않을까이 순간 그건 잘 하려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안 하겠다는 얘기야” 라는 묘수 법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흔들려도 괜찮아
콩밥이 나오면 콩밥이네 하고 그냥 먹고눈물이 나면 왜 나는가 살피면서 그냥 울고분별이 나면 싫네 하면서 방긋 웃어보고분별심이 아닌 분별 지혜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 봐야겠다그렇게 하나하나 그냥 하는 것으로 단순하고도 행복하게 살아봐야겠다내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이제부터는 오롯이 나에게 달렸다그러나 흔들리지 않겠다며 뻗대지 않고 이곳 수련원을 의지처로 삼아흔들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나 남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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