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월간정토 8월호]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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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5.11.04 15:23 | 조회 1153


    조정아(22기 백일출가)

     

    화가 난다

    학교에서 편지가 왔다. 제적이라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학교를 안 갔으니까.

    학교에 가긴 갔다. 강의실엔 안 들어갔다. 필수과목이 아니라서. 교수님이 깐깐해서.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대부분은 그냥 안 갔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학교에서 볼일 없다고 했다. 친구가 알겠다고 했다. 전화 끊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내가 아무리 학교를 안 갔다지만. 대학교가 뭔데 나를 오지 말라 하는가. 똑같이 등록금을 냈는데. 친구는 오늘도 학교에 가고. 나는 내일부터 학교를 못 간다니.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거실 한가운데에 제적증명서를 펴 놓고. 엄마랑 마주보고 앉았다. 엄마가 재입학을 하라고 했다. 돈 줄 테니까 졸업을 하라고 했다. 나는 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냥 자퇴를 한다고 했다. 네가 정말 자퇴를 하고 싶으면, 싸대기를 맞아야 된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안 맞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 크게 고함을 쳤다. 화내고 욕하다가 둘 다 지쳤다. 거실에 누워서 티비를 봤다. 티비를 보다가 엄마가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인터넷을 켰다.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 회사가 좋아 보인다. 대졸자를 뽑는구나. 저 회사도 나쁘지 않다. 또 대졸자만 지원 가능이었다. 이력서 페이지를 켜 놓고. 대학교 휴학을 중퇴로 바꿨다가. 다시 휴학으로 바꿨다가. 그냥 꺼버렸다. 페이스북을 켰다. 친구들의 최근 활동을 기웃거렸다. 어학연수를 간 사진을 봤다. 학교 근처에서 밥 먹는 사진,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았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또 화가 나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서비스 센터에서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이 말했다. 야구경기를 봐야 되는데 텔레비전이 안 나온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고쳐준다고 했다. 지금 당장 고쳐달라고 했다. 안 된다고 했다. 내일 기술자를 보내겠다고 했다. 고객님이 욕설을 했다.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냐고, 대기업이 서민을 우습게 본다고 했다. 욕설을 듣고 나는 참았다. 백만 원을 벌고 싶어서 참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못 참겠다

    더러워서 못 참겠다. 화를 내고 싶다. 폭주하고 싶다. 화난 사람이 화내는 소설을 읽었다. 때리고 부수는 영화를 봤다. 욕설을 하는 외국 래퍼의 노래를 들었다. 험담을 하는 코미디언의 티비 쇼를 보았다. 화가 난다. 분노한다. 그리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이 세상이 미쳤고, 이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 대한민국이 싫다. 서울이 싫다. 우리 동네가 싫고, 우리 집도 싫다. 우리 집에 사는 엄마가 싫다. 우리 집에서 안 사는 아빠는 더 싫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내가 정말 싫다. 실패한 것 같았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잘 나가던 친구들은 여전히 잘 나가고, 나보다 못 나가던 친구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돌잔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점점 전화도 받지 못했고, 답장 하지 않은 문자메시지가 늘어갔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어딘가가 고장이 났는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고장 난 내가 불쌍했다.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누가 나를 좀 고쳐줬으면. 아니,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알려줬으면 했다.


    고쳐줘라

    백일출가에 갔다. 백오십만 원을 낼 테니 고쳐달라고 했다. 자꾸 화가 나는 나를, 눈물 나는 나를 바꿔주라고 했다.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만 배를 하라고 했다. 한 시간에 오백 배씩 할 수 있다고, 쉽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오백 배를 했다. 무릎 아팠다. 천 배를 했다. 죽을 것 같았다. 천오백 배를 했다. 열불이 났다. 기도포를 쳐다봤다. “예 하고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했다. 삼천 배를 했다. 육천 배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이 왔다. 사람들은 하나 둘 절을 마치고 사라졌다. 나는 이천 배가 남았다. 온갖 분별심이 몰려왔다. 이거 해서 뭐하나. 이러다 관절 망가지면 누가 책임지나. 점점 화가 치밀었다. 도저히 못 참겠다. 만 배 바라지 총괄에게 갔다. 백팔염주를 백 번 돌리면 만 팔백 번이지 않느냐고 따졌다. 나는 만 팔백 배는 안 하고 싶고, 딱 만 배만 하겠다고 했다. 바라지 총괄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만 배만 하면 집에 가셔야 됩니다.” 그래 알겠다. 집에 가야지. 울고불고 집어 던지고. 완전히 미쳐 날뛰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도 그만 두면 나는 끝이다. 대학교도 그만 두고, 시 쓰기도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도 관두고 온 나였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갔다. 땀에 젖은 기도포를 쳐다봤다. 이천 번 고개를 숙였다.


    진정해라

    백일출가를 했다. 새벽 네 시 반, 대웅전에서 예불을 했다. 무릎이 아파서 화가 났다. 발우공양 바라지를 했다. 밥을 조금밖에 못 먹어서 화가 났다. 사백 배 정진을 했다. 계속 화가 났다. 도반들과 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리고 나눔의 장에서 나는 폭발했다. 도반의 나누기에 완전히 넘어졌다.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도반의 말을 듣고, 나는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남편이 다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가해자고 아내는 피해자라고, 같이 사는 아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상처받은 도반의 얼굴을 보았다. 미안했다. 그런데 내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다. 너무 아팠다. 아빠랑 엄마가 다툴 때, 아빠가 엄마를 밀칠 때 너무 아팠다. 엄마가 울면서 짐 쌌고, 동생은 엄마 따라 나가고, 나 혼자 내 방에 있었고, 너무 아팠다. 거실에서 아빠가 나를 불렀고, 엄마가 얼마나 틀린 사람인지 내게 말하고, 자신이 얼마나 옳은지 설명할 때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틀린 사람은 아빠고, 나쁜 사람도 아빠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고. 아빠가 가정을 망쳤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행자님은 아버지의 인생을 모르잖아요.” 법사님이 내게 말했다. 한번이라도 아빠와 마주앉아 깊이 대화해 본적 있냐고 했다. 아빠가 소리를 지를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안 맞는 결혼생활에 얼마나 지쳤을지. 입 다물고 등 돌리고 용돈만 받아가는 자식들 사이에서 얼마나 추웠을지, 또 아팠을지. 나는 모른다고 했다. 내가 본 아버지는 당신 인생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마음이 진정되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담담했다.


    또 화난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문경으로 돌아왔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수련팀에 갔다. 겨울명상수련 스텝을 하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겨울명상수련 시설팀을 맡았다.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입재식 직전 연락이 왔다. 수련생용 침낭이 없다고 했다. 급하게 침낭 90개를 옮겨야 했다. 팀원들은 전부 주차안내 중이었다. 명상수련 총괄에게 연락을 했다. 사람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총괄은 지원 못한다고, 내가 일을 잘못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강압적인 태도에 너무 화가 났다. 싸울까말까 고민하였다. 시간이 없어서 참았다. 셋째 날 밤이었다. 법륜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수련생들이 밖으로 나왔다. 사방이 깜깜했다. 총괄이 무전으로 나를 불렀다. 해우소 가는 길의 외등이 꺼져 있다고, 빨리 켜라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화가 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이 시키는 일은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훅 올라왔다. 해우소 쪽으로 걸으면서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송수신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님이었다. “내 목소리 들리나?” “네.” “등을 빨리 켜야지 왜 버티고 있노!”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죄송하다고 했다. 미친 듯이 뛰었다. 뛰어가서 외등을 켰다. 그리고 울었다. 해우소 넷째 칸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속마음과 마주했다. 스님말씀이 맞았다. 내가 정말 나를 세우고 있었다. 강압적인 태도, 짜증내는 말투 때문에 같이 일하기 싫다는 마음, 그건 핑계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화살을 쏘았다. 또,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무시하고 이기려고 했다.


    미안하다

    너무 미안했다. 내가 내 의견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을 상대 탓으로 돌렸다. 겁 많은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랬다. 그동안 내가 속으로 화내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 동아리 선배, 전에 만났던 남자, 그 전에 만난 귀여운 남자에게 너무 미안했다. 꾹꾹 참다가 폭발하듯 화내고, 내가 피해자라고 눈에 핏발을 세웠었다. 등 돌리고 돌아설 때, 그때는 내가 착한사람이었는데. 지금 혼자가 되어 돌아보니 모두 피해망상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아버지 생각이 났다. 8년 동안 연락 끊고 지냈던 아버지께 죄송했다. 혼자 화내고 혼자 상처받았구나. 내가 만든 아픔에 빠져 아버지께 더 큰 아픔을 드렸구나. 너무 죄송했다. 백일출가를 마친지 1년이 되는 날, 문경수련원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같이 밥 먹고 차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라진 나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듣기 싫은 말을 하시면 바로 화를 냈던 나였다. 입 닫고 씩씩대다가 집으로 가버렸다. 지금은 달라졌다. 이기려고 달려들던 내가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도 달라졌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정아가 많이 힘들었겠다, 정말 미안하다.” 아버지의 말씀에 쌓여있던 화가 쑥 내려갔다. 기적 같았다. 요즘에도 화는 난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면 그냥 화가 나 있다. 그래도 달라졌다. 화가 나면 ‘내가 미쳤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못 알아차리고 화를 내면, 돌이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감사하다. 화 많은 나를 알아차릴 수 있어서, 미안하다고 내려놓을 수 있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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