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월간정토 10월호] 백일출가, 그 후
  •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 백일출가 | 2015.11.29 20:31 | 조회 1912


    백일출가, 그 후

     

    백일출가 24기 손상우

     

    백일의 시간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을까. 백일출가를 마치고 6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 크게 ‘수행, 가족, 일, 정토회, 연애’의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돌아보고자 한다.

     

    수행

    백일출가를 마치고 회향하더라도 매일 300배씩은 하자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은 백출 막바지에 이르러 난관에 부딪혔다. 100일 중 98일째 있었던 가을 체육대회에서 농구대에 머리를 부딪혀(대회장이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문경제일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고 한동안 절은 할 수 없게 되었다. 회향 후 절 대신 주력을 하는데 염주를 3,000번 돌리려니 죽을 맛이었다. 수행을 놓아버리려는 꼼수 업식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래도 남아있던 백출의 여운으로 실밥을 풀 때까지 주력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즈음 왼쪽 무릎에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프지는 않은데 뭔가 물이 찬 것처럼 부풀어올라 이게 뭔가 싶어 병원에 갔다. 피부 마찰 때문에 생긴 물집 같은 것이라고 했다. 좀 있으면 없어질 거라 했지만 당분간 또 절은 금지. 다시 주력의 날들이 이어지는데 이놈의 무릎이 회복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절을 시도했다. 이제는 아프기까지 했다. 다시 찾은 다른 정형외과에서는 주사기로 물을 뽑고 약을 넣어보자고 했다. 무릎에서 와인빛깔 피고름이 나왔다. 며칠이 지나자 붓기가 가라앉고 통증도 사라진 듯 했다. 그런데 무릎뼈의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일부분이 툭 튀어나온 것이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연습 삼아 108배를 해보니 살짝 아프기도 했다. 그때부터 절 대신 주력과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를 믹스한 말도 안 되는 제멋대로 정진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즈음에 부울지부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한 여름수련 입재식에서 300배 공동정진을 하게 되었다. 주력으로 할까 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긴 염주 3,000번 돌리기는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도반들과 300배를 시작하고 마칠 때까지 특별한 이상이나 통증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무릎 핑계를 삼았나? 백일출가 때 고생했던 보상으로 이 정도 휴식은 당연하다 생각했던 걸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작은 언덕을 넘지 못할 산이라 여겨 호들갑을 떤 걸까. 그 다음 주에 있었던 대연법당 청년 도반들과의 1,000배 정진까지 주력 아닌 절로 무사히 마쳤다. 겨우 정상적인(?) 아침 정진을 하는 정토행자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말고 108배만 하기로 했는데 직장생활, 연애 등에서 이런저런 분별이 마구 올라오는 것을 보며 ‘하루를 겨우 108배만으로 버티는 것이 오히려 무리다’ 싶어 300배로 올렸다. 그 후로는 하루를 감당하는 힘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원래 하기로 했던 300배여서 내 자신에게 당당해진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족

    백일출가 기간 동안 꽤 오랜 시간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참회기도를 했었다. ‘아버지처럼은 안 하겠다’ 생각해왔던 내가 ‘혹시 아버지가 된다면 우리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라는 스스로도 놀라운 참회에 이르렀었다. 회향하면서는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하자는 마음이 아니라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이 되어 있어 신기했다. 지금도 부모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30년 넘게 키워온 반항심이 불쑥 올라올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부드러운 대답이 나오고, 해주시는 말씀은 감사하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부모님이 뭔가를 도와주시면 받으면서도 툴툴거렸는데 이제는 넉살좋게 ‘감사합니다.’ 하며 받기로 했다. 안 받으면 더 좋겠지만 나쁜 데 쓰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부산 사하구에 있는 재활용센터에 아버지 소개로 입사해 일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자존심 때문에 그런 부탁은 못 드렸을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진데 뭐’ 하며 가볍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아버지도 사장님 밑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며 좋게 생각해 주셨다. 제대로 일도 못하고 폐만 끼칠까봐 걱정은 하셨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부탁도 안 했을 것이다. 열심히 해볼 작정으로 당당하게 면접을 보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아침마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인사드리고 나오는 길이 즐겁고 감사하다. 일찍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정토회 활동을 하다보니 서로 부딪힐 시간이 적어서인지 만날 수 있는 짧은 시간에는 애틋한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며칠 전 주말에는 팀장회의가 있어 대전법당에 다녀왔는데 아버지께서 ‘너 참 재밌게 산다’며 웃으셨다.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차마 입밖으로 내어놓지를 못했다. 아쉽게도.

     

    문경에서 매일매일 일수행을 하며 몸으로 하는 일이 나에게 꽤 맞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해본 적이 없어 어색했던 것 뿐이지 하다보니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유수스님께서도 나같이 생각이 많은 스타일은 몸이 피곤한 일을 해서 저녁에 곯아떨어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 때 이미 재활용센터에서 일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재활용 센터의 일은 그야말로 단순하다. 중고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을 들여와 수리, 세척 후에 다시 판매한다. 내가 주로 하는 일도 세탁기 들어 나르고, 들여온 냉장고 씻고, 가구 배달가고 하는 일이다. 나는 원래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망상이 많은 편인데 그 무거운 지펠 냉장고를 들면서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고, 아무 생각없이 눈 앞의 냉장고를 하얗게 닦다보면 시간도 잘 간다. 더군다나 정토회 활동과 병행하기 위해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일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기 때문에(아버지, 사장님 감사합니다.) 더욱 부담없이 일하고 있다. 물론 안 하던 일이라 처음에는 여기저기 쑤시고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기도 했지만 한 달 정도 일을 해보니 처음보다 많이 적응이 되었다. 적응이 되는만큼 슬슬 올라오는 사람에 대한 분별이 최근의 수행과제다. 같이 일을 하는 분들은 우리 부모님 뻘 되시는 남자분들이 많은데다 입이 어찌나 거칠고 성격이 불같으신지 잠시라도 정신놓고 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깨어있는 데는 참 좋은 죽비소리 같기도 하다만은.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런가보다 하며 시키는 대로 했었는데 슬슬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하는 내 생각 내 고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슬슬 반항심도 들었다. 그런데 어차피 이래하나 저래하나 해야 할 일이고, 어떻게 하든 크게 상관없는 일이어서 일단 예하고 웃는 얼굴로 따르려고 한다. 같이 일하는 분 심기 건드려가며 내 고집 피워 뭐하겠나 싶기도 하다. 정 아닌 일은 가볍게 대안을 제안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내 제안이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물론 처음엔 험상궂은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하루하루 즐겁게, 일이기도 하고 수행이기도 한 출근을 잘 하고 있다.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며 한 군데 오래 못 견디는 업식이 있는데 그 업식을 깨보기 위해서라도 최소 3년은 버티며 내 발로 걸어나오지는 않을 작정이다.

     

    정토회

    백일출가를 마칠 즈음에 ‘JTS에서 상근활동을 해볼까, 부산으로 돌아와 원래 하던 청년정토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사이에서 조금 고민을 했었다. 사실 속은 이미 집에 가고 싶고, 여자친구 보고 싶고,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꽉 차 있었다. 아마 마지막 고집으로 JTS 어쩌고 했던 것 같다. 유수스님과 반장님께도 여쭤보고 결국 부산으로 돌아와 청년활동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지역에서도 그런 내 결심을 아셨는지 회향하고 일주일도 안 되어 부산 대연법당 청년팀장 소임을 제안하셨고 가볍게 수락했다. 예전에는 뭔가 책임이 걸린 자리는 부담스러워 피하고, 피하다 피하다 안 되면 못 이기는 척 수락하고도 한발 뺀 듯한 꼴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백출기간 동안 우리 24기 대표 소임을 자진해서 맡아본 것이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사실 소임 맡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고, 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들의 리더는 그 사람들에게 잘 쓰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돕는 바라지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나도 훨씬 가볍게 일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도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다. 하고 싶어 온 사람들이 더 하고 싶게끔 만들고, 활동을 통해서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그런 꺼리를 많이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는데 별로 반응이 신통찮을 때도 많다. 그래도 ‘이제 시작인데 안 되면 다시 해보고 달리 해보면 되지 뭐’ 하고 생각하니 무겁지는 않아 좋다.

     

    연애

    백일출가를 가기 전에는 이러다 의처증이 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자친구에 대해 집착하고 의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100일 동안은 일단 격리가 되어있다 보니 이 문제를 크게 다루지 못 했다. 그저 ‘백일출가도 잘 마쳤으니 연애도 잘 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회향해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오니 여왕개미만을 쫓는 수개미처럼 여자친구에게 들러붙고 싶어하는 내 꼴을 보고 실망했다. ‘백출 백날 해봤자 소용없구나. 나는 도대체 뭐하는 놈인가. 구제불능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도 그런 괴로움에 빠지기보다는 정진을 더 열심히 하다보니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 나는 원래 이런 수준이구나. 성인군자 흉내내고, 수행자 연습 쬐끔 했다고 착각을 했지만 나는 여자 없이 혼자 살 수준이 못 되는구나. 원래 그랬구나’ 받아들이니 훨씬 편해졌다. 최근에는 도반과 대화를 나누다 의심하고 상상하는 것보다는 여자친구에 대한 엄청난 의지심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평범한 아니 특별하지만 일단은 사람인 여자친구에게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기대를 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니 분별하고 화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기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자 옆에서 버티어 준 여자친구에게 미안하고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여자친구를 여왕개미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주고 나는 수개미가 아닌 수행개미로서 부지런히 일하고 수행할 작정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남자친구 백일출가 가 있는 동안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온 여자친구와 함께 한 쌍의 수행개미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이것도 물론 내 욕심이겠지만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을 함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백일출가 이후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겨우 백일 동안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오르락 내리락 울그락 붉으락 하며 살고 있다. 그저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세상에 다시 부딪혀 볼 힘을 얻은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의 도반들이 백출 이후 내 모습을 보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많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 그것이 전부이고 그걸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수정 답변 삭제 목록
    73개(1/4페이지)
    출가이야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다음 글쓰기새로고침
    처음페이지이전 10 페이지1234다음 10 페이지마지막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