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월간정토 12월호] 나머지 공부 중. . .
  •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 백일출가 | 2017.02.11 16:24 | 조회 356


    (왼쪽 필자)

     

    나머지 공부 중. . .

     

    백일출가 23기 양보람

     

    백일출가와 나머지 공부

     벌써 1년이 넘었구나. 두 번째 맞이하는 문경의 가을, 저 앞 늠름한 희양산은 한걸음 성큼 다가온 듯 더욱 선명하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공기는 티 없이 맑다. 법회에 나갔다가 우연히 백일출가 홍보 동영상을 보고 재밌겠다. 취직하기 전에 해봐야지.’ 하고는 가볍게 원서를 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직까지 이수했는데, 사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운 터였다. 마음공부가 뭔지도 모르고, 막연히 하면 좋겠거니, 시작한 백일공부. 공부를 마칠 때쯤에야 나는 내가 이곳에서도 습관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33명의 낯선 도반들 중에는 우연히 마음이 맞는 도반이 하나 있었고, 그 도반에 의지해서 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직면할 기회들을 놓쳐왔다는 게 분명해졌다. 재미있는 캠핑(?)100일간 한 느낌이랄까, 추억만 있고 내공은 없는 왠지 모를 공허함과 찝찝함. 뭔가 중심이 잡혀서 공부를 마무리해가는 도반들을 보면서, 후회해본들 소용이 없음을 알고, 나머지 공부를 결심하였다.

     

    백일출가 스태프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나는, 후배 백일출가행자님들을 안내하는 스태프 소임을 맡았다. 내가 그들과 다른 한 가지는 절에서 백일을 더 살았다는 사실뿐. 그런 내가 일 수행 시간에 방한 작업으로 대웅전과 각 처소 비닐치기 같은 일들을 행자님들과 함께 해나가야 한다니 막막했다. 모르면 물어보면서 하면 되는데 이런 것까지 물어 보면서 해야 하나, 그냥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내 생각대로 하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일이 되는 쪽으로 갈 리 없었다. 엉뚱한 안내들이 나가고 문제들이 발생하니 문제제기가 따랐다. 스태프 여는 모임할 때 거론되는 양보람 법우님, 어쩌고.’ 제발 내 이름이 안 불렸으면 했고, 요리조리 피할 생각만 하고 전전긍긍했다. 다른 스태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마음에는 벽을 치고 동떨어진 섬처럼 지냈다. 괴로웠다. 주변 사람들이 다 밉고 모든 상황이 싫어졌다. 그러다 문득 새벽 기도를 하는데, 처음 소임을 맡아서 하니까 놓치고 부족한 게 당연한데 그런 나를,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내세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구나. 내가 모르는 건 당연하다. 나도 부족할 수 있다인정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뭔가 에너지가 전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욕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로잡힐 때마다 돌아올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반장님, 내가 세세하게 안내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효정 법우님, 수행 일감을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문승 법우님 등 다 나에게 맞춰서 알려주고 있었던 거구나. 내가 귀를 막고 듣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부족한 나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 마음의 문도 조금씩 열려가고 있었다.

     

    양보람 법우님 답답해요

     일을 안내할 때 멋들어지게 잘하고 싶은데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고, 행자님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마음이 올라오고, 일 수행을 열심히 안 하고 뺀질거리는 행자님을 볼 때면 분별심이 치솟고, 생각대로 일 마무리가 안 되면 짜증이 나고. 내 마음은 그렇게 매 순간 요동쳤다한 행자님이 지나가다가 힘드시죠? 등에 나 힘들다 쓰여 있어요.” 하는데 울컥하면서도 화가 났다. 잘나 보이고 싶은데 들킨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일 수행을 마치고 간단히 소감 나누기를 하는데 한 행자님이 "양보람 법우님 답답해요. “ 하는데 그만 행자님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애써서 했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하고 서럽기도 했지만 그 이후가 더 괴로웠다. 행자님들 앞에서 우는 스텝이라는 내 수준이 스스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반장님께 다 때려치우고 회향하겠다고 말했다.

     

    다시 발심

     그 당시엔 눈에 뵈는 것이 없었고, 법사님. 반장님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나를 집에 못가도록 여기에 잡아둔다고 생각했고 숨 막힐 정도로 갑갑했다. 내 입으로 1년간 백일출가 스태프 해보겠다고 스스로 걸어들어와서는 집으로 도마갈 온갖 핑계거리를 만들고 나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완전히 사로잡힌 나에게 하루에 세 시간씩 정진하는 것이 권유되었고 정진하고 나가지 뭐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진을 하는데, 내가 엄마가 돼서 나 먹고 살기 힘들고 몸이 힘들다고 내 아이를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조금 힘들다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도망가면 무엇을 해도 같은 상황에 도망칠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공부해보기로 했으니 1년은 무조건 해보자,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무조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고 1년 그냥 시간만 보낸다고 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1년 동안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허송세월을 할 건지. 그래, 지금 나는 행자님들 앞에서 감정 조절도 안 되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짜증내고 분별도 내지만 이건 다 과정이다. 부족한 대로 조금씩 좋아지는 쪽으로 가보자.’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도중에 회향했다면 너무나 후회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어떻게든 버티면서 이렇게 가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부러진 발가락

     기수를 거듭하면서 스태프 생활도 할 만해졌다. 처음 해보는 일을 하기 전에 미리 겁먹어 걱정하는 습관도 많이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너스레도 떨고 말도 잘한다. 낯선 사람들에게도 먼저 다가가고 스스로에게 자부심과 자신감도 생겼다. 이렇게 모든 게 순조롭고 만족스러워질 때쯤, 인생은 모른다고 했던가.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문경 수련원은 계단이 많고 경사가 가팔라 발목을 접질리기 쉽기 때문에 나는 늘 발걸음에 깨어 있으면서 조심해왔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친 데 없이 생활해왔는데, 침구를 가지러 원력당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행자님 한 명과 마주치게 되었다.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밀고 당기다 발을 그만 꾹 밟히고 말았다. 다음 날, 병원에서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부러졌고 4주 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매일 유난을 떨며 씻는 나인데 혼자서는 도무지 씻을 수 없을 것이고 해우소나 세면장에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계단을 거치는 수련원에서 못 살 것 같았다. 깁스를 하고 늘 앉아 있어야 하는 생활이 까마득했고 생각만 해도 싫었다.

     재난은 늘 나를 피해갈 것이라는 확신, 믿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만한 생각이다. 평소에 건강한 신체에 대해서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어디 아파서 수술한 적도 없고 크게 아픈 적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발가락 부러지고 4주 깁스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웠다. 나는 어디 크게 아프면 안 되는 사람, 깁스하면 안 되는 사람, 건강해야 하는 사람으로 나를 쥐고 있었다. 좋아 보이고 좀 괜찮은 모습만 내 모습이고, 못나고 부족한 것은 내 모습이 아니다.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온 줄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나는 받아드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몰랐다. 사소하게 자잘한 것들, 일일이 말해야하는 상활들. 내가 지금 여기서 공동체 생활하려면 선택은 하나였다. 깁스하고 목발 짚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탁과 요청뿐이었다. 발 다친 덕분에 수도 없이 연습하고 있다. 부탁할 때 쑥스럽고 망설이고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래도 한다.

     

    부족해도 행복한 사람

     다리 다치고 며칠 안 돼서 무변심 법사님께서 다리 다쳐서 꼭 나쁜 점만 있을까,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물으셨는데 처음엔 대답을 못 했다. 나에게는 완전해야, 건강해야 좋은 것이지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은 곧 나쁜 것이었다.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았구나. 내가 잘나야, 완벽해야, 잘해야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내 모습들은 싫어하고 외면해왔구나,’ 발가락이 부러져서 걸음을 잘 못 걸어도, 잘 못 씻어도, 사람들에게 좀 귀찮은 부탁들을 해도, 지금 여기서 해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몰랐다. 다리가 불편하니 소소한 짜증이 계속 일어난다. 그래도 괴롭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발가락이 부러진 게 재앙이 아님이 분명하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과정들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전히 목발을 짚고 도량을 다닌다. 앉아서 행자님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한다. 앉아서도 할 일이 많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참 많은 나를 만난 것 같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보기 싫고 외면하고픈 모습들도 참 많이 만났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오늘도 공양주 법우님께 수련 때 행자님들 먹일 부식을 더 얻어내려고 아양을 떨고 있는 나를 본다. 나에게도 이런 애교가 있다니. 참 많이도 변했다. 멋모르고 백일출가를 하고 다시 마음 내 공부하기를 정말 잘한 거 같다.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게 재미있고 새롭게 발견되는 내 모습이 신기하다. 참으로 감사하다.



    (앞 줄, 오른쪽에서 4번째)

     

     

     

     

     

     

     

     

     

     

     

     

     

     

     

     


     

    수정 답변 삭제 목록
    73개(1/4페이지)
    출가이야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다음 글쓰기새로고침
    처음페이지이전 10 페이지1234다음 10 페이지마지막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