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월간정토 1월호] 살던 대로 살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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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02.11 17:11 | 조회 372

    백일출가를 마치고 다시 3년을 출가한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의 출가 이야기

     

    살던 대로 살지 않겠어!

     

    행자대학원 12기 허유진


     ‘얼굴이 아주 폈네. 폈어.’

     거의 9개월 만에 만난 친구들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건넨 첫 마디다. 나는 어느 날 홀연히 백일출가를 간다며 선언하고 산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런 나를 찾아 13년 지기 친구들이 친히 문경으로 납셨다. CEO급 스케줄을 자랑하는 내 덕에 얼굴을 본 건 고작 30분 남짓이었다. 친구들은 그래도 출가했다며 산 속에 살고 있는 내 얼굴을 직접 확인하곤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나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예전엔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얘기하고도 뭔가 답답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고 담담해져 있었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것들이 내안에 분명해져 있음이 느껴졌다. 스스로가 참 든든했다.

     

     

     ‘공동체 생활 안 맞잖아,

     예전의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단박에 이 말부터 했다. 나는 완전 안 맞지!’하고 맞장구치며 웃었다. 자타가 인정하던 도시형 인간인 나는 개인주의의 삶이 아주 깊이 배여 있던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사람들과 얽히지 않는 것이 편하다 여겼고, 원하는 걸 그때마다 얻을 수 있는 도시의 편리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다. 쓰고 버리는 삶은 나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이해타산으로 얽혀있으며, 경쟁해서 이기지 않으면 도태된다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친한 친구들에게도 과제를 공유하지 않았고 SNS에 즐거운 척, 행복한 척 사진을 올리며 행복까지 경쟁을 했다. 그랬던 내가 이곳 수련원에서 도반들과 함께 땀흘리고 농사를 지으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 가는 기쁨에 흠뻑 빠져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작은 힘들이 모여, 밭이 일구어지고 채소가 자라고 수확이 되고 밥상 위에 올라온다. 나 하나만 잘 해서, 나 하나만 잘 나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함께 하는 이들이 감사하고 든든하다.

     친구가 원하는 곳에 취직을 하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지 않곤 했다. 그런 거북한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또 못마땅해지곤 했다. 그러던 내가, 괴로워하던 도반이 돌이키고 환해지면 진심으로 감동하고 기뻐하는 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곳에서 나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알아가고 함께 만들어 가는, 진짜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듯하다. 평소 먹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밥을 먹고도 일을 하고 나면 금방 허기가 지는 걸 보면서 몇 시간 동안 러닝머신 위에서 뛰던 내가 얼마나 모순된 삶을 살았는지 반성이 된다.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를 자연으로 그대로 돌려주는 자연스러운 삶, 정말 사는 것이 무엇인가 배워 가고 있다.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좋다

     사실 문경에서의 생활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의 연속이다. 2014년 청년 가을 불대 입학 템플스테이 참여로 문경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곳에서 12일 이상은 절대 있지 못 할 거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앉아 있으면 코끝이 시리고 밑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친환경 해우소와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만보는 거뜬히 걸을 수 있는 도량. 누군가의 숨결을 아주 가까이서 느끼며 또 누군가가 밤새 고는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자야 하는 취침 공간. 내 것, 내 공간, 내 시간처럼 온갖 에만 익숙해 있던 내가 어딜 가든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산다는 건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이상하다. 분명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도 않은데 이 삶이 좋구나 싶다. 내 편한 것만 쫓아 혼자 쓰고 많이 쓰던 삶에서, 나눠 쓰고 함께 쓰고 적게 쓰는 이 삶이 참 이치에 맞구나 싶다. ‘나와 남에게 모두 이로운 삶당장은 불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편리한 이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이 됐다.

     

     

     ‘이 시대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바깥에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어디론가 가고 싶으면 훌쩍 떠났다. 그런데 늘 뒤쳐질까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럴 때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남들처럼 더 가지려고 더 잘 나려고 아등바등했다. 행복을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기에 급급했고, 언젠가는 더 행복해질 거라고 되뇌었다. 그 안에서 불안해하는 나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이런 시대에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덜 가지고도, 덜 쓰고도, 이기지 않아도 행복한 삶. 주워담으려는 것을 멈추고 함께하는 마음을 내니 불안함은 사라진다. 평온함과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어차피 똑같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면

     백일출가를 마치고 지난 9월에 3년 과정의 행자대학원을 입학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남들보다 더!’라는 가치관의 모순을 여실히 보았기에 더 이상 예전처럼 어리석게 살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출가를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살아가면서 똑같이 쓸 에너지를 올바른 곳에 잘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안다. 여러 어려움이 밀려오겠지만 염주를 한 알, 한 알 돌리듯 그냥 한 발, 한 발 가 볼 생각이다. 내게 있어 출가란 내가 살던 방식으로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것, 내가 선택한 길을 믿고 가보겠다는 것의 표현이다.

     

     

    불편을 감수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나는 지금 행자대학원생인 동시에 실험적 농부다.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배추벌레를 잡아가며 진드기와 씨름해서 기른 유기농 배추는 이게 뭐하는 짓이야?’했던 내 마음을 사르르 녹게 만들 만큼 달고 고소했다. 유기농 배추의 맛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그 상황을 충분히 감내 해낼 만큼 가치가 있었다. 이곳에서 분명하게 배운 게 있다면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될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길이라면 말이다. 여전히 현실의 나는 늘 넘어지고 자빠진다. 여전히 예전 습관들이 튀어나오고 쌓아왔던 욕구에 마음은 출렁거린다. 그러나 딱 그 수준의 나를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부족한 것들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내겐 출가다. 나는 출가수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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