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월간정토 2월호] 이렇게 매순간 나는 출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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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02.14 16:41 | 조회 319


    예비행대 당시 애호박 수확

     

    이렇게 매순간 나는 출가한다


    행자대학원 12기 유청림

     

    사람이 돼서 돌아와라

     “사람이 돼서 돌아와라백일출가를 떠나는 딸에게 아버지가 차안에서 지하철 입구로 들어서는 딸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건 낸 말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고 뒤도 안돌아보고 지하철 입구로 들어갔다. 그렇게 내 두발로, 내 힘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출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출가를 결심 할 때 즈음,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지 않았다. 나는 왜 가족들에게 화만 낼까? 자신감이 없고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20살의 나는 과감하게 대학진학을 포기했었다. 더 이상 학교가 아니라, 여러 일들을 통해 경험을 쌓으며 내 인생을 알차게 만들어 가야지 생각했었다. 너무도 좋아서 시작한 독립영화 극장일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3년 만에 그만두었다. 예전의 패기들은 오간데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도 싫었다.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내 모습은 패배자 같았다. 나 스스로가 못마땅한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화와 짜증으로 가족에게 쏟아 부었다. 그렇게 한바탕 퍼붓고 나면, 나 자신이 더 싫어졌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았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사랑하는 가족도 괴롭히는 나, 일단 멈추어야겠다. 그렇게 나는 내발로 따뜻하고 안락한 우리 집의 문턱을 넘는 출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출과 출가 그사이에서

     내가 변하기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굳은 결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백일출가를 하기위해 제일 첫 번째 관문은 만 배였다. 108 염주를 다섯 바퀴도 안 돌렸는데 벌써 집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눕고 싶을 때 누울 수 있는 편안한 침대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 가득한 냉장고, 부모님의 품이 그립고 친구들이 그립고 핸드폰이 그립고 예전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이 그립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한 배 한 배가 지옥이었다. 20번쯤 절하고 기대어 쉬고, 쉬고 나서 다시 절을 하면 정말 다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다 못하고 집에 가면 뭐라고 이야기할지 창피해서 방석에 엎어져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만 배 둘째 날에는 몸의 통증은 더 심해졌고 남은 시간 밤낮으로 절만해도 만 배를 못 채울 것 같았다. 어차피 삼일 안에 만 배를 못하면 백일출가를 할 수도 없고 못 할 바에야 지금 멈추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기로 마음먹고 쪽지를 보냈다. ‘남은 절 수가 내일 밤새도록 해도 다 못 채울 거 같아요. 내일 아침에 짐을 싸서 집에 가겠습니다.’ 고 쪽지에 써냈다. 근데 돌아오는 답변은 [미리 걱정하지 말고 한 배 한 배 합니다]였다. 그 쪽지를 보는데 그동안 내가 살면서 걱정만 하고 해보지 않고 중간 중간 포기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서 출가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또 다시 포기하려 하는 구나, 백일출가가 문제가 아니라 일단 시작한 이 만 배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염주를 들고 방석 앞으로 가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3일 만에 마친 만 배를 나는 5일째 밤에 마쳤다. 백일출가는 당연히 낙방하였다. 하지만 마음은 시원하고 뿌듯하였다.

     백일출가 대신 나는 49일 문경살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49일 문경살이는 깨달음의 장 등 수련이 시작하면 수련생들을 위해 공양을 준비하고 수련장 정비를 하는 등 수련 바라지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들어오는 날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왔던 수련생들이 나가는 날 가벼운 표정으로 나가는걸 보면서 마음에서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놓는 비누 하나, 발수건 하나, 잘 썬 김치 한 조각도 누군가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매일하는 300배 정진으로 몸도 많이 건강해졌다. 꾸준히 하니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에 용기를 얻어 백일출가에 다시 도전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만 배에서는 40명의 도반들 중 두 번째로 빨리 만 배를 마쳤다.

     

    마음이 많이 열렸구나

     “어머니 아버지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백일출가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절을 했다. 내가 처음 문경으로 내려갔던 날 나에게 사람이 돼서 돌아와라 했던 아버지는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으시고 잘했다 하시며 반겨주셨다.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고 박수를 쳐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늘 냉정하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 거드시지 않으셨다. 그저 지켜보셨다. 나는 아버지의 지켜보기만 하는 모습을 참 많이도 오해 했었다. 나에게는 관심이 없고 냉정하고 가족은 신경 안 쓰고 본인 일만하고 좋아하는 것만 하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았는데 백일출가를 하고 다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 달랐다. 그저 말없이 항상 가족을 챙기시는 분이었다. 제일 일찍 일어나서 집안을 살피고 어머니 일을 도와주시고, 내가 매일 절을 한다고 하니 내 무릎을 제일 걱정해주시는, 그저 표현 방법이 그랬을 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주지 않아서 내가 많이 오해했구나 싶었다. 아버지가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감사했다. 앞으로 다시 절에 들어가 공부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너 마음이 많이 열렸네라고 하시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다시 문경 수련원에 들어가겠다고 한 나를 보고 정말 출가 하는 거 같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 같다고 힘들어 하셨다. 근데 이내 눈물을 멈추고 엄마가 아직 자식을 떠나보낸 적이 없어서 적응이 안 되어 많이 힘들다고 하시고는 네가 원하고 뜻하는 바를 이루고 네가 행복하면 뭐든지 좋다 하시고 지지 해주셨다. 나의 출가는 나의 모든 의지처인 부모님의 품에서 나와 당당히 내 두발로 서는 어른이 되기 위한 시작을 의미했다. 20151월 다시 집에서 나왔다.

     

    나에게 진정 행복한 삶은 어떤 삶일까?

     1월에 다시 찾은 문경 수련원에서 3년 과정인 행자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자대학원이 미래문명을 이끄는 보디사트바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데 보디사트바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게으르고 포기 잘 하고 신결질 많은 이 업식만은 뛰어 넘어보자는 생각으로 행자대학원 준비 과정인 예비 행자대학원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백일출가와 다르게 핸드폰 사용이 가능한 하루하루,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바깥세상의 소식들, 친구들, 여행, 맛있는 음식 등 욕구에 사로잡혀서 몇 번을 짐을 쌌다가 다시 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맞이한 여름 명상수련,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을 먹고 눈을 감고 있으면 내 머릿속은 고요함과 거리가 멀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가족들, 친구들, 하고 싶은 온갖 것들에 대한 망상이 끊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도 많고 하지 못하니 마음이 엄청 괴로웠다. 이런 내 모습들을 보니 욕구에 완전한 노예인 자신이 보였다. 명상수련을 하며 매 저녁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정말 나도 욕구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면, 나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다. 여행도 가고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부모님 만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살았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되면 또 더 원하는 것이 생기고 또 더 원하는 것이 생기고 만족할 줄 몰랐다. 욕구는 충족되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괴롭다. 욕구는 채울수록 커지는데 충족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이 모순. 괴롭게 살긴 싫다.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진정 행복한 삶, 부처님이 보여주신 그 삶을 살아봐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 해 9월 행자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인생의 단 한번이 아닌 매순간 출가

     행자대학원에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공부하면서 부처님의 출가가 나의 출가와 그 시작점부터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셨고 나는 괴로워서, 덜 괴롭고 싶어서, 내 한 마음 편하고자 출가하였다. 요 고약한 업식이란 놈을 고쳐서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니 나 이외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내 시야가 넓어짐을 느낀다. 도반들과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자원을 아껴쓰고 재활용하고 순환시키는 생태적인 삶을 체득해 가면서 내가 지구환경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개인의 수행만 하는 것이 아닌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길을 가는 보디사트바. 나는 여전히 자책하는 습관이 있고 내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짜증내고 포기하려 든다. 매번 참회하고 마음을 내어 보지만 이전의 습관들은 참 힘이 쎄다. 시시각각 매번 돌아간다. 안된다고 포기를 반복하고 습관에 져서 넘어졌다가 다시 부처님의 삶과 가치관으로 마음을 내보자 가볍게 발심 하는 순간. 그것이 나에게 출가이다. 이렇게 매 번 매 순간 출가의 마음을 낸다. 나는 출가수행자이다.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기 위해 매번 습관에 지지만 그래도 계속 해본다. 이렇게 매순간 나는 출가한다.


    (필자는 오른쪽 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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