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월간정토 6월호] 일단 그냥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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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02.21 16:37 | 조회 281



    백일출가 20기 허순


    농사 안내를 하며 내 성향을 알아차리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내가 맡은 소임은 백일출가 행자들에게 농사일을 안내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농사를 모른다. 아버지는 농촌지도소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따라 주말이면 거름주기, 농약치기, 가지치기, 파종하기, 김매기, 모내기, 수확 등 웬만한 농사일은 다 해봤지만 농사를 잘 몰랐다. 일을 하되 주인 된 마음으로 하지 않고 늘 아버지가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해왔기에 농사일에 무지했다.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 백일출가 행자들에게 농사 안내를 해야 하니 처음엔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큰일이다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방관하는 마음도 들었다.

    행자들과 작물을 키우고 밭을 가꾼다는 것은 빨리 많이 수확을 하는 데 목표를 두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데도 수행이 우선이다. 일을 이치에 맞게 연구하면서 조율하고, 자연에 감사하고, 함께 하는 이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이다.

    행자들이 수행 관점을 놓치지 않고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성향상 일만 보고 사람을 잘 살피지 못한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다. 일을 하다 한참 후 고개를 들면 행자들과 저만치 떨어져 있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아차, 내가 또 놓쳤구나!’ 하며,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지, 행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리숙한 초보 농사 스텝 생활이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하우스에 쌈 채소 재배를 위한 틀밭을 만들었다. 할 일을 설명하고 각자 역할을 나누고 일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행자는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한 행자가 남 눈치만 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수도배관 매설하는 작업을 같이 하자고 불러 삽질을 요청했고 그 행자는 일이 명확히 주어지니 매우 열심히 하였다. 그 후로도 그 행자는 일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면 어떻게 할지 몰라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처음에는 일을 하기 싫어하나? 오해도 했지만, 그럴 때 마다 다가가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니 일 방향을 잡고 해나갔다. 나중엔 오히려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 행자는 생각이 많아, 머릿속에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첫 시작을 못하는 편이었다. 남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도구나 작업하는 방법을 보여주며 함께 하니 태도가 훨씬 주체적으로 변했다. 또 어떤 행자는 미주알고주알 설명 듣는 것을 질색 한다. 전체적인 틀만 이야기 하면 스스로 부딪혀가며 방법을 찾아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안내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매몰되지 않고 전체를 살피고, 내 잣대로 상대를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연습이 필요한 게 분명해졌다.

     

     안 된다는 것은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다

    백일출가 일정이 중반으로 접어들 즈음, 다른 일 안내하는 스텝이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나는 농사일에 더하여 전체 도량을 정비하는 일까지 안내하게 되었다. 농사 안내도 제대로 못 하는데 도량정비 안내까지 해야 하다니! 한 가지 일에 빠지면 주변을 못 보는 업식은 최대의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4시간이 배정된 동안, 두 팀을 왔다 갔다 하며 진행을 살폈다. 처음엔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에 집착할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몸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집착하지 않으니 번뇌가 없어졌다. 집요하게 파고 들 틈이 없으니 오히려 전체를 살피게 되었다.

    부처님 오신날을 준비하며 연등을 설치하던 때 일이다. 굵은 쇠파이프 기둥을 땅에 박아 세우고, 두 쇠파이프 사이를 와이어로 잇고, 전선을 연결하고, 연등을 다는 순으로 도량 전체를 둘러싸는 데 수 주일이 걸렸다. 작업 중에 지나가던 대중으로부터 연등이 너무 쳐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이어 작업을 다시 하기로 했다. 행자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이게 꼭 필요한 작업인가요?” “연등 줄이 좀 쳐져있는 게 뭐가 문제죠? 곡선이 오히려 이쁘지 않나요?” 하지만 백일출가 행자들은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으로 와이어 당기기 작업에 착수하였다. 3일에 걸쳐 6명의 행자가 전 도량의 와이어를 당기고 또 당겨 축 쳐져 있던 연등이 팽팽하게 올라가니, 전 도량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행자들이 더 기뻐하고 뿌듯해 했다. 싫은 일도 하고 나니 오히려 자랑하고 싶을 만큼 대견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날, 대중의 요청이 추가 되었다. “대웅전 옆에 연등 기둥이 너무 기울어져 있어서 기둥을 수직으로 세워야 되지 않을까요? 다른 곳도 아니고 대웅전 바로 옆이니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쓰면 좋겠어요.” 일리가 있는 제안이라 연등 설치를 했던 행자들에게 전달했다. 그 동안 연등 설치작업을 주도하던 힘 좋은 행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골이 잔득 난 표정으로 내게 항의 했다. 아니~ 법우님! 연등 기둥을 수직으로 세우려면 와이어를 다시 다 당겨 와야 하는데, 이 와이어는 저 밑에 행자원 사무실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와이어를 다 풀어야 한다고요. 이걸 정말 해야 된다면... , 일주일 더 시간을 주면 가능 하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면, 좋아요! 하겠습니다.” 골이 단단히 난 표정과 말투다.

    나는 상황이 어렵게 된 것은 맞습니다. 함께 연구를 한 번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일단 먼저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요?” 스텝이 물러나지 않으니 한두 명의 행자가 해보려는 마음을 낸다. 기울어진 연등 기둥 양쪽에서 와이어를 조금씩 당기고 전선도 당기니 기둥이 세워졌다. 와이어도 직선에 가깝게 팽팽해졌다. 그렇게 조금 더 세우려고 하는 찰라, 와이어가 뚝! 끊겨 버리고 말았다. 골이 난 상태로 마지못해 일 하던 행자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탄식하였다. “결국, 다시 해야 되겠네요!” 체념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나 역시 순간 당혹스러웠다. ‘내가 너무 무리하게 밀어 붙였나, 안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다시 일어났다. 행자님 한 분이 끊어진 와이어를 수습했다. 나는 큰 돌을 가져와서 기둥이 기울지 못하게 기초를 튼튼히 했다. 기울어지는 기둥 반대편에서 추가로 와이어를 당겨 말뚝으로 고정하였다. 행자도 와이어와 전선을 조금씩 펴서 여유 길이를 계속 확보해 나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와이어와 전선이 필요한 만큼 여유가 생겨 끊어진 부분이 이어졌고 기둥에 와이어를 묶으니 작업이 완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나 더 걸릴 것 같던 연등기둥 세우기는 하루 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

    일수행이 끝난 후, 행자들의 나누기는 감동이었다. 포기의 순간, ‘이건 도저히 안 돼하는 순간, 한계를 뛰어 넘어본 경험으로 에너지와 힘이 넘쳤다. ‘안 된다는 것은 내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것. 내가 긋고 있는 한계를 뚫고 나왔을 때, 세상이 확장되는 그 시원함.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샘솟는 행자의 얼굴을 보니 가슴 속에서 뭉클한 뜨거움이 올라왔다. 기쁘고 감사했다.

    행자들과 웃고 일하고 땀 흘리면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내 성격도 조금씩 개선되어 감을 느낀다. 예전엔 남에게 부탁을 못해서 혼자 끙끙거리며 힘들어 했는데, 요즘은 이것저것 요청도 잘 한다.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얼마든지 부탁할 수 있다. 여전히 안 해보고 잘 못하는 일을 맡으면 두려움이 올라오지만, 이제 어떠한 역할이 주어져도 그냥 한 번 해보지 뭐하는 여유도 생겼다. 백일출가 행자들과 함께 나 역시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합니다.’를 통해 내 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이런 기회가 감사하다.

     

     (맨 오른쪽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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