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월간정토 7월호] 경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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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02.22 16:53 | 조회 266



    경계를 만나다

    백일출가 27기 이정원

    2016년 530, 백일출가 99일째.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99일을 보낸 곰은 내일 사람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새벽 4시에 일어나 해우소냐 양치질이냐, 해우소냐 착석시간이냐, 머리를 감을까 빨래를 할까 매번 갈등하며 동동거리다가, 하나를 포기하며 편해지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양치질도 하고 해우소도 가고 착석시간도 늦지 않고 틈틈이 빨래도 하는 신통력을 얻은 99.백일출가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게으르고 불규칙한 생활습관을 멈추기 위해 휴지기가 필요했다. 만배를 비롯해 매일매일 이어질 정진과 많은 사람과의 공동생활이 걱정이긴 했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절하는 것을 싫어해 108배만 하더라도 큰마음을 내야 했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그동안 이리 빼고 저리 피했던 절을 벌충하는 시간이라 생각하자, 싶었다.

    백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하루가 참 길고, 천천히 가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추측한 날짜보다 이틀씩, 삼일씩 건너뛰듯 지나고 있었다.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날들을 보내도 괜찮은지 불안했다. 늘 배가 고팠고, 졸음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고, 취침시간에는 머리가 베개에 닿기도 전에 이미 잠 속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배고픈 사람이 행자이고, 제일 졸린 사람이 행자라던가 회향을 앞둔 지금, 백일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백출에서 본다는 자기 꼬라지. 나는 내 꼬라지의 그림자라도 보았을까? 몇 가지 경계 속에서 나를 보긴 한 것 같다.

    만 배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만배를 못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기에 새벽 3시까지 힘겹게 이어갔어도 별다른 번뇌는 없었다. 만배보다 더한 번뇌를 준 첫 번째 경계는 콩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콩밥을 싫어했다. 골라내며 유난떨지는 않아도 될 수 있으면 안 먹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검은콩, 노란콩, 심지어 땅콩까지 매끼니 알알이 박혀 나왔다. 콩밥이 아닌 날은 김치 포함 3찬 중에 하나가 콩장이었다. 콩밥과 콩장은, 싫은 것은 거들떠도 안보는 내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걱을 들고 망설이는 시간이 10, 5, 3초로 줄어들고, 그래 단백질이다하고 필수영양소로 여겨 먹고 있다. 먹다보니 맛있을 때도 있고.... 두 번째 경계는 눈물이다. 절하다가 울고 나누기하다 울고 도반들 얘기 듣다 울고, 걷다가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별거 아닌 얘기하면서 왜 우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나도 몰랐다. 이야기를 하려고 입을 떼면 갑자기 가슴 속에 파도가 쳤다. 눈물을 참으려고 주먹을 쥐어보기도 하고 머리를 때려보기도 했다. 순간 울컥하며 올라오는 마음에 나조차도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법사님께서는 그렇게 울음이 나면 3년은 울 수 있어,’ 하셨다. 남 앞에서는커녕 혼자서도 잘 울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주체 못하고 울면서 이유는 모르지만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울어도 괜찮아, 아무 일도 없네... 같은세 번째 경계는 분별이었다. 밖에서도 시비 분별은 많았다. 옳고 그름을 가려보고 긴지 아닌지 확실한 게 좋고 그랬다. 들어오면서 티내지 말고 잘 살펴봐야지, 했었는데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4시간 함께 살아가는 도반들은 때론 친구였다가 선생님이었다가 마장이었다. 저렇게 이기적이라니, 잔머리 지존, 개념이 없는 건가... 하며 끊임없이 판단을 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하며 싫은 마음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귀한 시간을 이렇게 소모하며 보내는 것에 짜증도 올라왔다. 싫어도 피해갈 수 없는 같은 일정, 같은 공간에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여는 모임에서 분별이 날 때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질문으로 하고, 내가 어떤 때 분별을 내는가, 살펴보았다. 사람이 아니라 행동, 상황에 집중해서 보았다. 어떤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좀 많이 할지는 몰라도 사람 자체가 온전히 싫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진 장점도 반복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 개념이 없는 게 아니라, 순수한 거야, 도반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데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는가, 덜컹 하기도 했다. 상대에게 들이댔던 잣대는 백출 중반을 넘어서며 내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 이렇게까지 치사해? 속이 바늘구멍 만하네, 잘난 것도 없이 분별이 작렬하는구나.

    시원하게 트여있어 좋았던 수련원의 모든 공간은 이제 감추고 숨을 데 없는 심판대같은 느낌이었다. 내 본래 모습이 이랬나, 드러내 인정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 참으로 막막했다. 백일출가 막바지에 철퇴를 맞은 기분....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남는다. 일체의 장 때 행복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지향하지만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답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호두과자를 다섯 개나 먹을 수 있어 즐거워하고 아이스크림에 환호성을 질렀다. 라면에 만두를 넣어주고, 등반 때 초코바 한 개만 주어도, 잠을 한 시간 일찍 잘 수 있어도 왜 이렇게 잘해주냐며 입이 귀에 걸렸다. 날짜는 당연히 모르고, 요일은 법회를 듣는 수요일과 발우수건 바꾸는 월요일, 목요일만 있는 생활. 수요일에는 천원을 보시하면서 만원의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월요일 목요일 점심은 종종 카레나 짜장이 나와 닦아먹기에 깨어있을 수 있었다. 단순하고 별거 아닌 일이 현재의 전부가 되어 진심으로 행복해지던 시간이었다.

    백 하루째로 시작하게 될 바깥 생활. 아마도 밖에 나가면 초단위 분단위로 쪼개쓰던 신통력이 사라질지 모른다. 학습해라, 정진해라, 소임해라, ‘잘 보세요하던 스승도 안내도 없다. 언제 출가한 적 있었냐며 100일을 날려버리고 살까봐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도 있다지금부터 100일이 중요하다는 법사님 말씀, 3년간 300배는 해야 한다는 회향수련의 과제에 마음을 다시 다져본다. 새벽기상은? 도량석 소리를 알람으로 쓰면 눈은 못 떠도 몸은 싹하고 일어나지지 않을까... 이순간 그건 잘 하려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안하겠다는 얘기야라는 묘수법사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콩밥이 나오면 콩밥이네 하고 그냥 먹고, 눈물이 나면 왜 나는가 살피면서 그냥 울고, 분별이 나면 참 싫으네 하면서 방긋 웃어보고, 분별심이 아닌 분별지혜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 보아야 겠다. 그렇게 하나 하나 그냥 하는 것으로 단순하고도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 내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 이제부터는 오롯이 나에게 달렸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겠다며 뻗대지 않고 이곳 수련원을 의지처로 삼아, 흔들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나 남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려 한다.

    (두번째 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필자)

    (앞 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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