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월간정토 9월호] 아버지, 덕분에 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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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02.24 13:35 | 조회 239





    아버지, 덕분에 내가 있습니다

     

    백일출가 25기 성은영

     

    아버지로부터의 독립

     

    일주일 전, 아버지의 49재를 무사히 잘 마쳤다. 이제는 정말 아버지로부터 독립했다. 아니 독립됐다. 1년 전 6, 작년 여름 아버지에게 감정적으로 그리고 모든 면에서 독립하고 싶다며 백일출가를 결심했다. 그리고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지만, 마음의 변화는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사랑과 감사함으로 바뀌는 것은 찰나였다.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순간 모든 것은 달라졌다.

    아버지만 변한다면

    아버지가 도박을 시작한 것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였다. 도박으로 인해 모든 가산을 탕진하였고, 그로 인해 도망치듯 성남으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는 홀로 어렵게 식당을 열었고, 그 때마다 아버지의 도박과 사채 빚으로 악순환은 계속 이어졌다. 슬퍼하는 어머니를 항상 곁에서 숨죽이며 지켜봐 왔고, 눈물로 지새우는 날들을 보며 자연스레 아버지는 내 마음 속 미움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돈을 달라며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깨지고 부서지고, 그 때부터 내 마음속 불안함도 시작되었던 것 같다. 홀로 있는 어머니가 안타까웠고,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학교 공부보다는 엄마의 가게 일이 우선이었고, 친구들보다는 가족 일이 먼저였다.

    그 때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께서 저질러 놓은 모든 일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자살기도를 했다. 정말 두려웠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서 석유를 뿌리며, 칼을 꺼내며 죽겠다는 모습을 그 옆에서 온전히 지켜보다가 아버지의 두 손을 꽉 붙잡았다. 어느 날 내가 20대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는 외롭다고 했다. 그 때의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아버지가 너무나 미웠기 때문이다. 그 모든 시작은 아버지의 탓이라고.

    아버지가 도박을 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행복하고 다시 도박을 시작하면 가족은 불행하다. 그리고 내 삶도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에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였고, 자연스레 평화재단에서 청년포럼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활동을 시작한지 2년만에 신기하게도 아버지의 도박중독 증세가 약해지기 시작 했다. 새 삶에 대한 의지도 갖기 시작하였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1년 동안 단주, 금연, 단도박을 이어온 아버지를 지켜보며 이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1년이 되던 날, 아버지가 다시 도박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부모님 내려놓기

    그렇게 20156월 여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 배를 마주했다. 입방 목적은 아버지로부터의 감정적 그리고 모든 것들로부터의 독립이라 했다. 삼일 동안의 만 배가 끝나고 법사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목적은 이미 달성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부모님 두 분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였고, 다만 두 분을 내가 쥐고 놓지 않았기에 독립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핑계, 아버지 핑계. 이래서 난 불행하고 그렇기에 난 앞으로도 불행할 것이라며, 본능적으로 부모님을 쥐고 있었다. 마치 내 인생의 선택권을 부모님에게 모두 넘긴 척 하며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아이와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무시하고 부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나 자신 또한 평가절하하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인정받으려 부단히 애쓰며 100일을 지내왔다. 아버지를 보는 시선이 곧 나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었고 세상을 마주하는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참회를 거듭하며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라는 상에서 벗어나 평범한 50대 남성, 그리고 여성으로서 부모님 또한 나와 똑같은 한 사람이며, 부족할 수 있고, 힘들고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분에게 주어진 삶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고 끝없는 사랑과 애정으로 키워주고 살펴주셨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슴 깊이 느꼈다. 부모님을 내 양 어깨에 모시고 평생을 살아가도 모자르다고,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은 천지의 은혜 또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두 분에게 받은 것은 고스란히 잊어버리고 내 자신이 힘들고 불행했다고 느꼈던 기억들만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 행복과 불행 조차도 내가 결정지은 것들인데.

    아버지에게 죄송스러웠고 또 한 없이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100일 동안 부모님을 점점 내려놓는 연습을 해나갔다. 아버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주었고, 사랑했고, 내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셨던 분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마음은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변한 건 그 마음을 마주하는 내 마음이었다. 아버지의 삶으로 인해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드리는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은 그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내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오롯이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아빠, 잘 가!

    회향 후 마음은 전보다 잔잔하고 편안했다. 아버지를 마주하는 내 모습도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도 가벼워졌다. 그리고 또 다시 어려움은 다가왔다. 다시 시작된 도박으로 인해 자살기도를 하고 아버지는 힘들어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와 함께 아파하고 일어서려 했다. 아버지도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두 달 전 즈음, 퇴근길 인도에 서 계시던 아버지 앞으로 졸음운전 차량이 교통사고를 냈다. 그렇게 아버지를 갑작스레 보내드리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복한 삶을 살아가며 베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불법에 연을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공덕이었다. 지금 내 모습 그대로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인지,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아버지는 몸소 나에게 그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내 자신이 귀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귀하게 대접하며 베풀며 살아가라 했던 아버지. 이제는 더 이상 힘들거나 외로워하시지 말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늘에서 더 행복 할 꺼라 믿으며 아빠, 잘 가!” 라고 인사드리고 싶다.

    부모님 은혜 감사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제 갈 길 가겠습니다. 진실한 불자가 되겠습니다. 베풀며 살고 다른 사람의 의지처가 되겠습니다.’

    백일출가 때 받은 기도문은 내 인생의 지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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