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월간정토 1월호] 내 인생의 주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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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03.04 12:21 | 조회 906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백일출가 27기 윤인선

     

     돌이켜보면 지금껏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근데 그게 다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다. 부모님 덕에 그렇게 살았는데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은커녕, 아버지에 대해서는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맞은 기억 때문에 성인이 돼서까지 미워했다. 내가 못난 게 다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난 사랑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퇴근해서 멀쩡하게 자고 있던 남동생이 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동생은 퇴근 후 친구와 함께 맥주를 한잔했다. 친구가 집이 멀어 동생 방에서 잤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친구를 침대에서 재우고 동생은 이불 달라는 소리도 안하고 맨 바닥에서 자다가 저체온 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할머니는 식음을 전패하고 벽만 보고 동생이 자주 하는 말만 중얼중얼 하다가 제초제를 드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이렇게 어이없게 우리 가족 중 두 명이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아있는 가족들도 조만간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8개월 정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은 가족들은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꺼내지 않고 각자가 너무 힘든 날들을 보냈다. 예민하고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래선 안 되겠다. 불안하고 두렵다. 상담을 받자. 몇 차례 받은 상담은 뭔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지인 소개로 알게 된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 마음이 정말 가벼웠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잦아들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 아버지가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30년 묵은 숙변이 쑥 내려간 듯 가슴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 가벼운 마음이 한 달 정도 유지 되었을까?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 다시 미워지는 아버지. 나눔의 장을 다녀와서 조금 다시 가벼워졌을까 하는데 또 다시 가라앉는 마음. 불교대학, 경전반, 이렇게 하나하나 정토회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부모님과의 사이도 많이 좋아졌다. 사회생활도 다시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가 진급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나 자신을 보았다. 돈을 더 받는 것은 좋지만 이것저것 책임지기 싫어서 진급을 마다하는 나. 왜 그럴까? 언제든지 손 벌리면 들어주시는 부모님에 의지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더 노력하지 않고 있구나! 내가 답답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던 거다. 그런 부모님이 동생과 할머니처럼 어느 날 내 삶 속에서 갑자기 사라질까봐. 나 스스로 서야겠다. 의지심을 없애고 독립심을 키우고 내 두발로 내 삶을 헤쳐 나가야겠다. 그렇게 백일출가를 결심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백일출가 입방원서에 체력상태를 이라고 적었다. 난 머리 쓰는 일보다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일을 좋아했고 남들보다 뭔가를 더 많이 들거나, 빨리 많은 일을 해내고 싶어 했다. 무거운 거 잘 들고 삽질을 남들보다 더 할 때면 도반들의 칭찬과 환호가 내심 좋아서 더 힘든 것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병이 난 것 같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10년 전 수술한 하지정맥류가 반대쪽 다리로 재발한 것이다. 회향하면 수술해야지 하며 아파도 절을 하고 살피지 않고 일을 하던 대로 했다. 도반들은 그런 나를 둔하다고 했다. 여하튼 후반으로 갈수록 다리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부대표 소임을 하면서는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이 많이 올라왔다. 말과 행동이 다른 도반들을 보면,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은, 싹 무시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나 자신까지도 싫어졌다. 그 마음은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패턴과 몹시도 비슷했다. 내가 규정지어 놓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무시하고 외면하는 마음. 어느 날, ‘, 그랬구나!’ 알게 되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백일 출가가 끝나갈 무렵, 법사님과의 시간에 뭔가 모를 자신감에 차서 회향 후 이것저것 해보려는 내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대답, “아직 개척할 수준이 안 된다.” 가슴에 총을 맞은 듯 한 충격을 받았다. 뭔가 딱딱한 껍데기가 허물어지는 듯 한 느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두려웠고 편안하게 부모님에게 묻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백일정도 공부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해하고 적당히, 그럴싸하게 나를 포장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런 내 무의식을 법사님을 통해 화들짝 들킨 기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 안계시면 못 살겠구나!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구나!

    공부를 더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편안히 집에서 쉬고 싶기도 하고, 다리도 아프고...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대로 집에 가면 집에 들러붙어 부모님 없이 못사는 인간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나가서 살아도 되고 여기서 살아도 되지만, 여기서 사는 게 나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나는 더 공부하기 위해 문경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픈 다리는 수술을 했다. 수술만 하면 금방 정상 생활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불편한 다리로 오르막길을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회복이 더뎠다. 내 몸은 내 맘대로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은 내 불편함을 몰라주는 것 같고 그러다가 하루는 울음이 폭발했다. 내 상태를 말을 안 해도 다른 사람이 다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정작 불평불만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외면하는 이는 나였다. 그러고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주변의 엄청난 배려와 도움 속에 이런 불편한 몸으로도 이곳에서 생활 하고 있다는 게 알아차려졌다. 감사함을 모르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구나!

     

    나는 여전히 멀었다. 여전히 포근한 부모님 품이 그립다. 하지만 조금 더 감사한 줄 안다. 백일출가 때 받은 기도문이 이제는 좀 와 닿는다. ‘부모님 저를 길러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 충분히 받았습니다. 저는 아무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랑받기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잃을까 두려운 마음은 진정 감사함으로 이겨낼 수 있다. 기도문을 지팡이 삼아, 흔들려도 다시 바른 길로 돌아와 내 인생 주인이 되어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인선아 고맙다. 진석아! 할머니! 편안히 잘 가세요. 제가 저희 집의 기둥이 될게요!

     



    (첫 번쨰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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