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월간정토 8월호] 올라오는 마음, 그냥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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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8.11.18 13:19 | 조회 44

     

    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올라오는 마음,

    그냥 흘려보냅니다.

      
     
     

    허윤수 (백일출가 30)

         

        가끔은 정말 혼자 있고 싶은 날이 있다우습지만 나는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 날에는 홀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셔야 이 마음을 달랠 수 있어!’라고 생각해왔다그래서 백일출가 중 가장 어려운 말이 그저 흘려보내세요.’라는 말이었다혼자 있고 싶은 이 마음 흘려보내고 23명의 도반들로 바글거리는 자비당으로 들어가야 한다나에게 마음이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분명한 진실인데 이 마음을 흘러 보내라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나도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여겼었다하지만 나의 경우엔 오만가지 마음의 소리 중 오직 한 가지 마음에만 유독 귀를 기울였다그 마음은 우울함이었다나는 나를 우울한 사람이라 정의했다그리고 여러 이유를 찾아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어왔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많이 싸웠어나는 지속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어나는 부족해나는 우울해.’ 등 그 누구도 주지 않은 부정의 꼬리표를 스스로 붙여서 괴롭히고 있었다그래서일까 즐거울 만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져도 즐겁지 않았고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우울한 감정을 쫓아 내 불행의 이유를 찾아 다녔다그렇게 불행과 괴로움의 씨앗을 스스로 심어갔다.


    ▶ 만배 중인 글쓴이 

       
      

    한 생각 사로잡히다

         그런 오랜 우울감을 극복하고자 오게 된 백일출가였지만 입방 관문인 만 배에서부터 쉽지 않았다마왕은 부처님의 모습으로도 온다더니 나의 경우는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3000배를 넘어가며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고남자친구의 목소리와 모습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윤수야힘들면 포기해도 돼괜찮아!” 라며 만 배를 포기하고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평상시 나는 힘든 일이 있으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출가자로서의 삶을 살기위해 온 정토수련원에서도 힘이 드니 남자친구 생각이 강하게 떠올랐다한 생각 사로잡히기 시작하자 다리는 철근이라도 매단 것처럼 더 무거워졌고 시간은 더 천천히 더디게 흘렀다. 108배는 충분히 한 거 같은데 싶어 염주 알을 헤아려 보니50개도 안 돌아가 있었다.

     

        나는 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에 쉽게 사로잡히곤 하는데 만 배를 할 때도 역시나 방석에 머리가 닿자마자 생각이 치성했다. ‘지금 집에 가도 괜찮을까지금 가면 수련보시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절하고 절 하다가 생각했다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집에 가자백일출가가 뭐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워만 배를 하며 돌이켜 보니지금 내 삶도 충분히 행복해백일출가 굳이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잖아내일 새벽 일어나자마자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가자!’그렇게 내 마음은 집으로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NGO탐방,명동에서 JTS거리모금을 마치고(왼쪽이 글쓴이) 

     

        다음날 반장님께 찾아가 집에 가겠다고 했다그런 나를 반장님은 몇 차례 회유 하셨다하지만 내가 가겠다는 말을 반복하자. “그럼소감문만 쓰고 가세요.”라고 하셨다나는 사물함 앞에 앉아 짐을 꾸리고 소감문을 쓰기 시작했다그런데 소감문을 다 쓰고 나니 소감문에 적힌 내 마음이 너무 웃기고또 슬펐다.나는 지금까지 내가 조금은 잘난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문경까지 백 일치 짐을 싸들고 와서는 조금 힘든 상황에 처 했다고 집에 가려고 안달하는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또 조금만 힘들면 그 마음 하나 견디지 못하고 무서워서 벌벌 떠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감당 하지도 흘려보내지도 못 하면서 쌓아둔 마음들이 펑하고 터질 것 같았다눈물이 났다괴로웠다.

         

    마음 흘러 보내기

        백일의 시간 동안 마음이란 것을 흘려보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절을 할 때 생각을 잡고 있으면 절을 할 수 없었고일을 하면서도 생각이 끼어들면 흘러 보내야만 일을 할 수 있었다싫은 마음도 미운 마음도 흘려보내야 살 수 있었다그러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싫은 날도 있고 그냥 원래 마음이란 이렇게 변하는구나.’ 알게 되었다그런데 이렇게 습관적으로 살아왔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그냥 생각일 뿐인데 생각들이 머리에 착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백일출가 30기 나눔의장을 마치고(맨 뒷줄 오른쪽 끝이 글쓴이) 

     

        또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는 날들도 있었다문경에서는 새벽에 예불을 보러가야 해서 기상 후에는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하지만 그 날은 해우소 칸 밖으로도 나가기도 싫은 날이었다나가는 순간 시작되는 공동체 생활이 부담스럽고 그렇게 해우소에 쪼그려 앉아서 싫다 싫다 하고 있었다그렇게 해우소에 앉아 문득어제 그 칸 그 자리에서 행복하다 느낀 내 모습이 떠올랐다같은 자리 같은 상황인데 내 마음은 매일 같이 변하는구나이렇게 매순간 변하는 것을 나는 그동안 나로 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우울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덤덤하기도 한 마음이 순간순간 올라오고 지나갈 뿐이었다잡힌다고 잡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것을 나로 삼아왔으니... 그렇게 그 날은 그냥 해우소를 나가 새벽예불 하러 대웅전으로 갔다예불에도 늦지 않았고 천일결사기도를 마치고 나니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사라져 있었다.

         

        백일출가를 하면서 함께 사는 도반이 미워서 당장 집으로 뛰어가고 싶은 날도 있었고 문경이 너무 좋아서 평생 살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그 마음들도 매 순간 달라졌다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를 선택해 본다.

     

      

    ▶ 백일출가 30기일체의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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