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월간정토 3월호] 백일출가, 나를 묶고 있던 나에게서 벗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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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8.11.18 13:36 | 조회 47

     

    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백일출가, 나를 묶고 있던
    나에게서 벗어나다

    권미영 백일출가 32기

    백일출가의 첫 번째 고비, 만 배

      지난 가을, 여전한 더위 속에서 32기 백일출가 도반들은 호기롭게 염주를 들고 만 배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리는 아파오고, 땀으로 옷은 등에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여기저기에서 한숨과 앓는 소리가 들렸다. 천일결사 기도와 수련, 나름대로 운동으로 관리해 왔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만 배의 산만큼은 꼭 넘고 싶었다. 다들 하고 있는데 나만 못할 이유가 있겠냐며 다시 엎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했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눈물까지 흐르니 꼴이 말이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 몰골 따윈 상관없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손을 짚고 겨우겨우 일어서다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108배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끝냈을 땐 감사한 마음과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엉엉 울어버렸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시작한 정토회와의 인연,
    그리고 출가
      2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기술고등학교에서 컴퓨터 디자인 봉사 활동을 하며 내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러나 깨달음의장을 통해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법사님은 “너를 찾은 것이 아니었겠지”라고 말씀하셨다. 말문이 막히고 그 말씀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토록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찾아 방황했지만, 그 무엇도 내가 될 수는 없었다.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정토회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불교대학도 졸업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울했고 자책하며 나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었다. 20대부터 가지고 있던, 딱 3개월만 절에 들어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여전했다.

    만배 정진 중(가운데가 글쓴이)

      백일출가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흔히들 하는 템플스테이가 아닌, 진정한 나를 오롯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정말로 출가한 수행자로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 나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기 위한 첫 관문인 만 배는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절을 할수록 내 고집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참 별것 아닌 존재인 줄 모르고 거들먹거렸던 것을 알고 나니 부끄러워졌다. 이런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준 부모님,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에게, 더불어 나에게도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살아왔던 지난날,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자책했던 수많은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만 배를 마쳤다.

    두 번째 고비, 오락가락 마음속의 만 배
     가장 큰 산이라고 생각했던 만 배가 끝나고 이 만큼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곧 내 마음속의 만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백일출가의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경계에 부딪혀 마음에선 폭풍이 몰아쳤다.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 화장실에 가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온갖 분별이 올라왔다. 급기야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것이 내 마음 자유로워지는데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회의감까지 들었다. 

    은행과육 벗기기(오른쪽 첫번째가 글쓴이)

    행복해지기 위한 지난 나의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법사님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회의감에 차 있었고, 무기력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에 ‘회의감 또한 마장’이라는 법사님 말씀이 가슴에 박혔다.

    늘 도망치며 살았던 지난날
     그랬다. 나는 몸이 피곤하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언제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그 상황을 회피하곤 했다. 현재 상황을 개선한다는 핑계로 전혀 다른 전공으로 바꾸기도 하고, 이일 저일 기웃거렸으며, 내 경험을 정리해 보겠다고 석사 학위를 따기도 하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남이 좋다고 하는 것과 근사해 보이는 것을 하려고 애쓰며 목적지도 없이 열심히만 살았다. 늘 사회적 기준, 부모님의 기대, 타인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어 살고 있었다. 인정받기를 원하고 칭찬해 주지 않으면 내 존재가 사라져버릴 것처럼 불안에 떨며 살았다. 내가 한 선택의 결과가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까봐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두려워하며 중요한 고비마다 내 책임을 타인에게 넘겨버렸다. 그러고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왜 나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했느냐고 남 탓을 하며 괴로워하고, 그 상황에서 도망가 버렸다. 그제야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가는 즐거움
     그렇게 또 한고비를 넘겼다.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오롯이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새파란 하늘을 보며 트럭을 타고 고라니 밭에 내려가 내 업식과도 같은 잡초를 뽑으며 도반들과 수행담을 나눌 때는 그저 행복했다. 사사롭게 걸리던 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냥 말소리로 들렸다. 가슴에 다가오지 않던 기도문도 가슴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 참 잘 사셨습니다. 저는 어른입니다. 저는 아무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가 받은 공덕 베풀며 조상들의 각박한 업을 풀겠습니다. 아무 걱정 없습니다.’라고 기도문을 외우며 부모님을 비롯하여 내가 받은 그 많은 사랑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받은 것을 모르고 자신을 괴롭혔던 나에 대한 깊은 참회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 스스로 참 많이도 옭아맸구나!’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진을 끝내고 대웅전 밖을 나서는데 햇빛이 달리 느껴졌다. 너무나 상쾌한 기분이었다. 
    ▲  공양짓기(오른쪽이 글쓴이)

      아버지 연배의 도반을 통해 보게 된 오래된 작은 상처 그러나 그런 가벼움도 대웅전 계단을 미처 다내려가지 못했다. 대웅전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따라오던 아버지 연배 되는 도반의 “해탈하셨습니까?”라는 한마디가 내 신경을 긁었다.

      그렇다! 그렇게 나의 업식이 쉽게 뿌리 뽑힐리가 없었다. 그 후 그 도반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까지도 거슬렸다. 나의 상쾌함을 그렇게 단시간에 깨트려 버렸다고 탓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궁금했다. 왜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걸까. 답을 찾고 싶었다. 그저 정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럴까, 정말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창 피아노에 빠져 있을 때였다. 얼마나 심취했는지 뒤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한 곡이 끝났을 때였다. 아버지가“그렇게 치면 되나, 더 빨리 이렇게 쳐야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감시하면서 비꼬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전혀 다른 상황에서 그 도반의 모습을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충격이었다. 그 사소한 일이 상처가 됐었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여태까지 내가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스스로
    내 마음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니 나자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날카롭게 구는 딸에게 서운해하셨을 아버지에게도 죄송했다.

    색안경을 벗고 본 세상의 가벼움, 그리고 되찾은 마음의 자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색안경 중 하나를 벗고 나니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도반도 나의 아버지가 아닌, 도반으로서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많은 분별과 걸림돌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사로잡혀 며칠을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나의 모습도 내 모습이라고 받아들이고 살펴 볼 수 있었다. 백일이 끝날 무렵 아직도 남은 나의 업식들이 궁금했다. 나라고 고집하고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백일출가 홍보 중(둘째줄 왼쪽 두번째가 글쓴이)

      그래서 나는 지금 문경에 남아 예비행자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한겨울 내린 눈을 쓸고 밥을 지으며 청소를 한다. 그 모든 일이 나의 업식과 마주하는 순간임을 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해지는 중이다. 아니, 이미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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