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월간정토 3월호]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불편하게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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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7.12.26 14:58 | 조회 546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불편하게만 해 ♪

     

    행자대학원 13기 한혜련

     

     

    백일출가 때부터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도반이 한 명 있었다. 그 도반은 백일출가만 마치면 후다닥 속세로 도망갈 거란 나의 예상을 꺾고 예비 행자대학원에 지원했다. 다행히 백일출가와 예비 행자대학원은 사람이 많아서 그 도반과 직접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웬 걸,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에비 행자대학원 12명 중 나와 그 도반 둘만 나란히 행자대학원 13기에 입재하게 되었다. 사이좋은 도반과 입재해도 힘들다던데, 처음부터 못마땅한 도반과 함께하게 되다니.... 내가 이곳에서 성불하거나, 아니면 못 견디고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를 꽉 다물고 행자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둘이서만 함께 산 지 어언 18개월이 지났다. 솔직히 사람 관계는 그냥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좋아지는 줄 알았다. 그래 맞다. 삐거덕거리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서로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24시간 둘이 붙어 같이 자고, 먹고, 일하고, 학습하고, 나누기 하면서도 그 도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계속 올라왔다.

    공양하기 위해 자리를 잡을 때면 순식간에 내 눈은 방 안을 스캔했다. 그러고는 그 도반과 가장 떨어진 곳에 발우를 펼쳣다. 정기 수련, 외부 일정 등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하는 일정이 있기만 하면 최대한 도반과는 떨어져서 지냈다. 마치 그 공간에 그 도반이 존재하지 않는 듯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도반이 보여도 도반을 외면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무리에 너무도 편하게 섞여들었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다른 사람들은 가볍고 농담도 잘하는 그 도반과 함께 있는 걸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 도반이 이야기하는 모습도, 농담하는 모습도, 심지어 웃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물론 머리로는 이런 내가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불편한 걸 어쩌지 못했다. 돌이키려고 애써도 매 순간이 불편함, 사로잡힘의 연속이었다.

     

    둘이서 찰떡처럼 함께 있어 보아요

    그 도반과 내가 이렇게 서로 떨어지려고만 하는 걸 보시고 묘수법사님께서 과제를 주셨다. 둘이 꼭 붙어서 공양을 하고 무슨 일이든 함게 논의하며 붙어서 생활해보라는 과제였다. 과제가 부담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제발 이 불편함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둘이서 붙어서 지내다 보니 내 안에 불편함이 지속됐고, 도반과의 갈등도 더욱 더 표면에 드러나면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는지 알 수 있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하루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행자대학원 13기와 14기가 함께 주례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회의장소에 올라가 보니 아직 아무도 없었다. 책상을 깔고, 방석을 깔고, 멀티탭을 설치해 주례회의를 세팅하고 기다렸다. 문이 열리며 그 도반과 14기 행자님들이 웃으며 들어왔다. 그런데 그 도반이 나한테 하는 말인 듯 아닌 듯 툭 던지며 한마디, “아니 이 정도나 필요한가?‘”. 그 말이 나에겐 ’굳이 이렇게까지 세팅할 필요가 없는데, 너 너무 쓸데없이 오버해서 세팅했어‘로 들렸다. 그 순간 기분이 상하면서 무시받은 느낌.

    또 한 번은 8차 천일결사 회향식 점심 공양시간, 공양물을 뜨고 돌아오는데 도반이 다른 법우님과 문경수련원 선발대의 공양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가는 것 같아 무슨 일이냐고 도반에게 물었다. 그러자 도반이 (내가 느끼기엔) 퉁명스럽게 “아무일 없는데요!”라고 말을 끊듯이 대답햇다. 그 순간 기분이 상하면서 무시받은 느낌.

    내가 도반에게 불편했던 것은 이 두 가지일로 대표될 수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그 순간에는 놓쳤던 일들이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상한 채 넘어가 버린 일들이라 그 이후에 기분이 나쁜 채로 있었으면서도 내가 언제 불편해졌는지 정확하게 잡아낼 수조차 없었다. 법사님과의 시간과 도반과의 이야기 중 내가 걸리는 지짐이 보였다. ‘상대가 날 무시했다’라고 느끼는 순간, 난 이성을 잃고 기분이 한없이 상했던 것이다.

    한편, 수련원에 산 공덕으로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사실은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 근데 나는 자꾸 무시받은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도반에 대한 미움, 짜증, 그리고 종종 폭발하는 화로 이어졋다. 전에 묘수법사님께서 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잘 살펴봐야겠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나를 무시한다는 것을. 남의 표정과 말, 말투에 내 기분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나를 내맡겨버린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랬다. 실제로 살펴보니 내 불편함과 괴로움은 남이, 도반이 나를 무시했는지 아닌지는 관계가 없는 문제였다. 내가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자꾸 머리로 파고들었다. 왜 나는 나를 무시할까.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다면 결국 나도 나를 무시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 누구도’라는 표현에 나는 포함 안 되나 등등. 이렇게 머리 굴리는 나에게 보수법사님께서 일침을 가하셨다. 괴롭고자 작정해서 온갖 머리를 쓴다고. 그냥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는데 내가 순간 착각했구나, 잠시 미쳤었구나’하고 탁 돌아오면 되지, 뭘 또 그걸 가지고 붙들고 늘어지고 있느냐고.

     

    아, 내가 미쳤었네!

    내가 나를 무시하면서 도반을 나쁜 사람이라고 미워했구나. 아무도 상처 준 사람이 없는데 상처 받는 사람은 있다는 게 나의 경우였다. 정진을 하면서 참회했다. 내가 어리석어서 나를 많이 무시했구나. 그러자 ‘나쁜 도반’이 아닌 그냥 도반이 보였다. 근데 ‘미쳤다!’하니 나한테도 참회할 것도, 도반에게 미안해할 것도 없었다. 도반이 나를 무시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었는데, 이건 다만 내 착각이었다. 상대방이 상처를 준 사람이고 나는 상처를 받은 사람으로.... 실제와는 전혀 다른 괴로움의 소설을 쓰고 있었다.

    미쳤다!. 하니 내 평생 이렇게 편안하고 가벼운 나날들이 없다. 그전에는 도반의 반응을 보면서 눈치를 보고 불편해했다. 근데 이젠 도반이 보인다. 도반이 언제 불편해하는지. 언제 편안해하는지, 상태가 어떤지... 요즘 난 제정신 차리는 연습 중이다. 순간순간 도반에게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해줘.”“내 말에 동의해줘.”“문제제기 하지 마”라는 요구로 도반이 안 보이고, 순간 미치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연습이다. 이제는 내 불편함의 원인과 해결할 열쇠가 나에게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겠다.

    도반이 불보살이다! 도반이 있어서 내가 ‘무시받는다’는 느낌에 걸려 넘어진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앞으로도 내가 어디서 어떻게 넘어지는지 내 사랑하는 도반 덕에 알게 되었지. 도반은 나를 연습할 수 있도록 경계를 비춰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고마워요, 박은혜 행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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