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월간정토 4월호] 맹구 행자의 초보 농사 일기
  •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 백일출가 | 2017.12.26 17:52 | 조회 548





    맹구 행자의 초보 농사 일기

     

    행자대학원 13기 박은혜

     

    수련원의 김치는 내가 책임진다

    정토수련원에 겨울이 다가오면 공동체 모든 식구가 한데 모여 김장 울력을 한다. 매년 2박 3일 정도, 이때는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다 함께 김장한다. 작년 김장은 수련원의 최고 일꾼이 단 둘뿐이라 ‘부부“라고 불리는 행자대학원 13기 행자가 배추 농사부터 김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진행해 보았다. 비록 두 명이었지만, 주어진 일이면 뭐든지 해보는 정토행자이니 적은 인원은 문제 되지 않았다.

    8월 배추 농사부터 시작된 김장. 11월 초, 김장을 일주일 앞두고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새벽 소임으로 배추벌레를 잡기 위해 배추밭에 가보니 배춧잎이 빳빳하게 얼어 있었다. 당황하여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니 영하 3도 이하로 3일 이상 지속하면 배추 농사가 망한다는 것! 기상예보에 따르면 그날 최저온도는 영하 5도인데 더 추워질 예정이다. 더군다나 수련원은 해발 500m의 산골에 있어 기상예보보다 3~4도 더 추운 곳이다. 김장 날짜는 다가오는데 배추 상태가 이 모양이니 김장용 배추 조달에 빨간불이 커졌다. 더구나 이번 김장용 배추는 구매하지 않고 100% 자급하기로 했으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밭에 가니 배춧잎은 어제보다 더 많이 얼어 있었고 무 몇 개는 윗부분이 살짝 투명하게 얼어 있었다. 어제까지 보았던 넓고 푸른 배추밭이 눈에 선한데 지금의 배추밭은 얼어서 시들시들한 느낌마저 드는 게 마치 배추의 시타림을 보는 듯했다. 앞이 캄캄했다. 그러던 중 1년 전 배추 농사를 했던 12기 선배 행자님들도 같은 문제로 배추밭을 천막으로 덮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년보다 이번 배추밭이 훨씬 넓어 몇 명이 천막을 구하러 간 사이, 남아 있던 행자는 급하게 무를 뽑기 시작했다. 무청이 얼어서 손을 대는 족족 상해있었다. 언 무를 발견할 때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몸은 무를 뽑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 밭은 내 밭이 아니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 불현 듯 드는 생각. 어떤 것도 애쓰면서 살지 않았던 습관 때문인지 마음 한쪽에는 이 사태를 남의 일로 미루려는 마음, 물러서는 마음이 올라왔다. ‘배추, 무를 사서 김장하면 되지 뭐!’ 이렇게 도도한 마음 한편으로는 한여름 숨을 곳 없는 햇볕 아래 밭을 일구고, 아주심기를 하고, 함께 일했던 많은 도반, 그들의 땀방울이 떠오르며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단지 이 밭을 돌보는 소임을 맡았을 뿐, 모두의 배추밭이다. 공동체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배추 농사를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천막으로 배추 이불을 열심히 덮어주는 것! 천막 한 겹이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해봐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을 때 즈음, 행자대학원 14기 도반이 부모님께 전화했다. 진주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부모님께 이 상황에 대해서 여쭤보니 원래 이때쯤 온도가 떨어지면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더 맛있어지는 거라고, 그리고 수확은 햇볕에 얼었던 잎이 살아나고 물기가 마른 오후에 하는 거라고 하셨다. ‘띠용!띠용!아~! 그런거구나. 괜히 맘고생 했잖아!’ 그 말씀을 듣고도 혹시나 해서 김장 전까지 매일 저녁 배추 이불을 덮어줬다. 나중에 천막이 약간 모자라 덮어주지 못했던 배추와 비교해보니 이불을 열심히 덮어준 배추들이 훨씬 싱싱했다. 요즘 수련원 김치가 너무너무 맛있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운 배추 맛이 꿀맛이다.

     

    겨울 시금치

    어렸을 적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솟는 뽀빠이를 보고 시금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가 해 주신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는 시금치 무침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먹었었다. 그런데 요즘 수련원에서는 작년에 담근 묵은 김치도 먹어야 하고, 작아서 김장 때 사용하지 않고 보관한 배추들도 소비해야 하니 가끔 깨달음의장에서 시금치 나물이 남을 때만 맛보며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시금치 농사를 지었던 건 2016년 봄이 끝이었고, 그 이후로는 통일감자와 김장에 쓸 배추 농사에 신경 쓰느라 가을에 시금치 농사를 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못 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월동 시금치를 보통 심는다는 10월은 이미 지나갔고 시끌벅적하게 김장 1,500포기를 마무리하고나니 11월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추우니 지금 심으면 안 될 거야. 그런데 시금치는 먹고 싶어. 내 마음속에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자꾸 떠오르는 시금치 농사. 이렇게 머리만 굴리던 어느 날, 공양간 앞을 지나가다가 평소에도 농사에 관심이 많으시던 연수원팀 법우님이 행자대학원 14기 행자님과 설거지를 하면서 “왜 시금치 농사를 안 하는지?” 묻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농사 담당인 나는 “법우님, 이미 너무 늦은 거 같아요! 이제 곧 서리가 내리잖아요” 했다. 그러자 그 법우님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괜찮을 거 같은데요. 겨울 시금치가 얼마나 맛이 있는데, 한번 심어봐요.”

    ‘지금 심어도 가능하다고? 그래, 안 해보고 어떻게 알겠어. 내가 먹고 싶어서 농사짓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는 거잖아. 그래 해보자!’

    그날부터 바로 시금치는 석회질을 좋아하니 폐화석 듬뿍, 그동안 잘 발효시킨 음식물 퇴비, 오줌액비, 유박퇴비, 산에서 긁어모은 낙엽까지 뿌려주고 밭을 만들어서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12월 첫날 비닐하우스 안에 시금치 씨를 뿌렸다. 월동 시금치 씨앗은 최근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야들야들한 동남아산과 확연히 모양이 다르다. 줄뿌림 방식으로 과감하게 밭에 직접 뿌리고 물을 듬뿍 준 다음, 김장 때 사용하고 나온 큰 비닐 두 겹으로 터널하우스를 만들었다. 이렇게 비닐하우스 안에도 터널을 만들어주는 이유는 보온과 보습 때문이다.

    책에는 보통 3일 뒤면 싹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3일, 일주일, 이주일 후에도 싹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인내의 시간을 견뎌 3주가 지나니 시금치 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다, 시금치야!”

     

    맹구 행자의 깨달음

    내가 책임을 지고 해본 일들이 뭐가 있을까? 대학만 가면 자유라고 하셨던 부모님 말씀에 따라 겨우 졸업장만 따고 진짜 자유가 뭔지 모른 채,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그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 궂은 일은 피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살던 대로 살지 않으려고 행자대학원에 들어와서도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재미없는 일, 인정받기 어려운 일은 나 몰라라 했다.

    며칠 전 도반들이 나에게 준 별명은 맹구. 힘든 일도 ‘저요! 저요!’ 하고 맹구처럼 손을 들어보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별명이다. 위기에 닥치면 항상 도망쳤던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책임을 배웠다. 농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행자대학원 13기의 나와 동기, 우리 둘에게 봄․여름에는 감자, 가을에는 배추, 겨울엔 시금치를 맡겨주고 지켜봐주신 문경공동체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수정 답변 삭제 목록
    90개(1/5페이지)
    출가이야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다음 글쓰기새로고침
    처음페이지이전 10 페이지12345다음 10 페이지마지막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