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월간정토 6월호]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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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8.11.18 13:38 | 조회 27

     

    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신나영 백일출가 31기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도문
      “저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백일출가 기간에 용맹정진을 함께한 나의 참회 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아는 게 없다고, 그것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참회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이게 정녕 나의 기도문이란 말인가!’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이 문장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래, 내가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는 아니지.’이 정도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100일은 생각보다 짧았다.

      다행히 나는 아팠다. ‘나는’과 ‘아팠다’를 한 문장에 쓰게 될 줄 몰랐다. ‘다행히’와‘아팠다’를 한 문장에 쓰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프면서 나는 내가 모르는 게 참 많았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잔병치레도 별로 없이 살아온 나에게 몸의 통증은 낯선 것이었고, 그래서 더 불편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 내가 아팠다. 백일출가 중반 이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곳이 다양하게 아팠다. 그중에는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관리하던 곳도 있었지만, 아플 줄 전혀몰랐던 곳이 아프기도 했다. 

    오, 나의 손목님! 손목보살마하살 
      손목이 그랬다. 손목이 아플 줄은 정말 몰랐다. 글씨를 쓰고 책장을 넘기고 컴퓨터 자판을 치는 등 사무직에 종사해온 나의 손목님은 묵묵히 언제나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 손목님의 이름을 불러볼 일도 없었을 거다. 그렇다. 나는 내 몸에 대해 무관심했다. 막연하게 통증을 두려워하기만 했을 뿐, 내 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손목이 아프고 나서야‘맞다, 나한테 손목이 있었구나.’ 알았고, 무릎이 아프고 나서야 ‘맞다, 나한테도 무릎이란 게 있었구나’하고 알았다. 나는 내 몸이, 아프지 않은 건강한 몸이, 영원할 거라고, 영원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몸에 관해 관심 갖지 않았다. 제대로 작동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니까.

      아프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픈 내가 어색했다. 방바닥을 닦을 때도, 낫질할 때도, 설거지할 때도 ‘잘’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내가 잘‘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모든 일에 나만의 기준,‘ 상’이있었다. 객관적으로 결과가 좋아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나는 나를 닦달하며 몰아붙였다.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 성격 덕분에 목표를 일단 세우면 이루기는 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는 뭔가에 짓눌린 듯 마음이 무겁고,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걸로 부족한 것 같아 아쉽고 헛헛했다. 만족이라는 게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데 아프고 보니‘상’이고 뭐고 붙잡고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못하는 나를 매일 봐줘야 했다.


    ▲고라니밭 운력(맨 왼쪽이 글쓴이)

      도움 받는지도 모르고 늘 도움 받으며 살아왔구나 도반들에게 도움 받고, 배려받는 것도 어색했다. 겉으로는“아이고 감사합니다”하며 납작 엎드렸지만, 속으로는 ‘내가 아프지만 않았어도…’하면서 답답해했다. 도반이 생색이라도 내는 것처럼 보일 때는 ‘손목이 부러지더라도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심보로 몸을 상하게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덜 아팠던 것이다. 무거운 김치통을 들어 옮기고, 톱밥 포대도 메고 나르며 나를 꽉 붙잡고 놓지 않는‘끈기’와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하는 ‘오기’덕분에 손목 통증은 더 심해졌다. 고열을 동반한 감기몸살까지 오자 나는 결국 앓아누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꺼이꺼이 울면서 이제는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아프구나.’
    그리고 내 옆에는, 자기도 아파서 누워 있다가 내가 우는 소리에 일어나 나를 달래고 팔다리를 정성스레 주물러 주던 도반이 있었다. 그 도반 덕분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던 많은 인연이 떠올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 애쓰면서, 힘들고 외롭게 살아왔다는 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내가 아주 어리석었다는 걸, 진짜 무지했다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그렇게 왔다.


    ▲만배 중인 글쓴이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것, 괴롭지 않으면 행복한 것
      건강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살면서 아픈 적이 거의 없었는데도 나는 내가 특별히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력이 저질이다, 운동 신경이 둔하다, 몸이 뻣뻣하다 등등 내 몸 상태에 대해 늘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건강하다는 건, 야근 후에 새벽같이 일어나도 몸이 가뿐하고, 날렵하고 유연한 상태를 의미했다. 그런데 아파보니 아프지 않은 상태, 그게 바로 건강한 것이었다. 나는 평생 아주 건강했던 것이었고, 그건 결국 모두 부모님 덕분이었다. 따로 건강관리를 하지 않으면서 이 정도로 안 아프고 살아온 건, 건강하게 태어난 덕이라고밖에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행복에 대해서도 그랬다. 내게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었고,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특별한 것을 얻어야 하고, 뭐든 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조건을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했지만, 그렇게 노력해 얻은 행복은 월급이 통장을 스치듯 오래가지 않았다. 백일출가를 하면서 알았다. 내가 행복이라 불렀던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 쾌감이었다는 것을.

      평생 살던 습관을 갑자기 거스르려니 백일 동안 몸은 고되고 힘들고 아팠지만 그런 와중에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특별한 것을 얻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도 아니고, 누가 옆에 있어서도 아니었다. 돌계단을 오르면서, 비 오는 날 새벽 해우소 청소를 하면서, 도량석 때 눈 비비며 일어나 이불 개는 도반의 뒷모습을 보면서, 행복은 그냥 내가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걸 모르고 실속없이 어긋난 파이팅 속에서 애쓰며 살았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이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몸은 여전히 아프다. 일을 웬만큼 해서는 한 것 같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해야‘아, 일 좀 했구나’하는 성격이니 언제 아파도 아팠겠지, 생각은 했다. 그런데 한의원에 갔다가 “이대로 살다가는 40대에 팔다리부터 마비가 오기 시작할 거다”하는 얘기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내려놓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겠구나! 

     



    ▲경주 나들이(왼쪽에서 두 번째가 글쓴이)
     
      아픈 덕에 나도 몰랐던 나와 마주할 기회가 참 많아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플 기회는 더 많을 테니 업식을 마주할 기회도 차고 넘칠 거다. 지도법사님 말씀이 새삼 큰 위로가 된다.

    “우리가 부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부처가 되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부처를 이룰 것이다. 어떤 명제가 참이라면 그 명제의 대우명제도 언제나 참이다. 언제 어디서나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은 낯설고, 그래서 어렵다. ‘가끔은 괴롭고 가끔은 뭔가에 얽매여도 괜찮지 않나?’하면서 부처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어차피 이 길로 다시 돌아올 거, 돌아올 때 헤매지 않도록 멀리는 가지 말아야지.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의 은혜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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