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월간정토 7월호] 백일출가 깨달음의장부터 백일출가로 크리스천 부디스트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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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8.11.18 13:39 | 조회 34

     

    백일출가 행자들의 이야기

    깨달음의장부터 백일출가로
    크리스천부디스트가 되기까지


    이희영 백일출가 32기

    열심히 살았지만 왠지 허전했던 마음

      학창 시절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 4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문득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현실에서 도망치듯이 일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준비했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은 놀랐고 나는 1년 과정의 영어공부라는 것으로 포장해서 여행을 준비했다. 그 시기 어머니께서 깨달음의장을 추천해주셨다. 출국 전, 남은 시간이 아까워서 깨달음의장을 마쳤다. 깨달음의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을 무렵, 또 문득이 시간과 이렇게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가훈이 생각났고, 이럴 바에야 백일출가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기만 했던 불교에 대한 호기심

      사실 나는 기독교가 모태 신앙이다. 그런 나에게 문경 정토수련원은 무겁게 느껴졌고 겁이 났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깨달음의장을 했던 문경이 그냥 그리웠다. 무작정 귀국한 나는 백일출가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또 문경이 그립고 좋아서 깨달음의장 바라지를 다녔다. 그러나 접시에 밥 닦아 먹는 것도, 씻지 못하는 것도 불편했고, 빵과 과자 등 간식을 못 먹는 것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하면서‘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것이 무서웠다. 사람들이 주문처럼 외우는 중에 대웅전을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올라왔었다. 그래도 몇 차례 바라지장에 참가하면서 예불과 절을 차근차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의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거룩하게 여기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이 어떤 것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백일출가와 불법을 통해 새롭게 보게 된 하나님

      못 해낼 줄 알았던 만 배를 마쳤고 입방을 했다. 백일출가 생활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생겨도 만 배 한 것이 아까워서 갈 수 없었다. 돈도 아까웠다. 친구들이 부모님 돈으로 공부하고 노는 동안 나는 힘들게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온 백일출가였다.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쉽게 나갈 수 없었다.


    백일출가 홍보물 제작 중인 글쓴이

      백일출가 동안 불교대학 과정을 학습하고, 법사님과 함께 마음공부를 하면서 성경 말씀과 불법이 비슷한 점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다. 회향하기 일주일 전 항상 궁금했지만 용기가 부족해 이야기할 수 없었던, 어쩌면 숨기고 있었던 질문을 유수스님과의 시간을 통해 꺼내놓았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불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낍니다. 제가 불법 공부를 잘 못한 건가요?”라고 묻자 “아무 문제 없어요. 하나님을 너무 작게 봤나 보네”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왈칵 눈물이 났다. 벅찬 감정이었다. ‘이렇게 작은 나를 크게 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구나. 내가 내 그릇 크기로 하나님을 봤구나.’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회향 후 내가 기대했던 것, 그리고 또 다른 공부

      백일출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다. 뭐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향한 날 저녁,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께 내 마음을 표현한 경험이 많이 없어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용기 내어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께 “아버지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과 함께 삼배를 드렸다. 목소리가 떨렸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매우 싫어하셨다. 그렇게 합장을 하고 삼배를 드리는 행동은 스님이나 부처님한테 하는 것이라며 인상을 쓰셨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확 올라왔다. 그래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기대하는 마음이 있구나. 아버지도 불교문화가 처음이고 어색한 것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것일 뿐이구나.


     청춘콘서트에 백일출가 홍보 부스에서(첫째줄 왼쪽이 글쓴이)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정토인’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 함께 아침 수행 후 나누기 하는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 시간은 들쑥날쑥했고, 나는 나누기를 원했는데 어머니는 하소연과 내 나누기를 지적하시는 것 같았다. 나보다 더 물을 아껴 쓰지도 않고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회향하면 백일출가에서 배운 대로 일회용품도 안 쓰고, 아침 기도도 빠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달콤한 번뇌와 유혹거리가 많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가르치려 드는 나를 보았고, 내가 옳다는 고집에서 내가 잘났다는 밑 마음임을 보았다. 전에는 모르고 지나가거나 남 탓 하면서 모두를 경쟁 상대로 여겼는데, 지금은 알아차리고 ‘그렇구나. 내 마음이 그렇구나!’하고 받아주게 됐다.

    180도 바뀌지 않아도 괜찮다

      사실 회향하면 180도 바뀐 삶일 줄 알았는데 비슷한 것 같다. 벌어 놓은 돈 까먹으며 사는 것이 불안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하기도 한 마음이 없어진 게 아니다. 그래도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잘 쓰이는 것이 행복하고, 지금의 나 이대로 좋고 감사하다.

    ▲ 도반들과 함께 (첫 째줄 오른쪽이 글쓴이)

      언제라도 문경에 가면 반겨주시는 반장님과 법사님, 그리고 도반님들! 내 고향 문경! 나는 가진 것이 참 많다. 못하는 것과 싫은 것은 가볍게 거절할 수 있고, 실수해서 욕먹으면 욕 듣고, 그냥 살아가는 요즘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

      요즘은 문경 밖 대중 속에서 사는 분들, 특히 깨달음의장 마치고 파견근무 하는 분들의 모습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시간 못 지키더라도 꼬박꼬박 아침 수행을 하시는 어머니를 포함한 지역법당 보살님들과, 나에게 유난스럽다고 구박하는 친구들, 모두가 아름다워 보인다.




      백일출가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고, 인생 최고의 캠프였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단 한번뿐인 100일’이라는 귀한 시간이었다. 나를 여기에 있게 해주신 하나님, 부모님, 반장님, 법사님, 그리고 도반님들께 이 글을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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