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월간정토 10월호] 지금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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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8.11.18 13:41 | 조회 44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지금의 내가 좋다



    정훈웅 백일출가 33기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어 결심한 백일출가

      작년에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기회가 닿아 여행팀에서 일하게 됐다. 동북아 역사기행과 인도 성지순례를 준비하면서 서울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도반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여유가, 얼굴 표정이, 수수한 차림새가, 서로를 대하는 편안한 모습이 참 좋았다. 하루를 온전히, 법륜스님께서 만들고자 하시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보낸다는 것도 참 멋져 보였다.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난 오랫동안 솔직한 사람,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왔다. 불교대를 다니고 언제부턴가 스님 말씀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점점 기대감에 들뜨던 그때, 특강수련으로 갔던 문경에서 홍보전단지를 받고 백일출가를 처음 알게 됐다. 그땐 백일출가만 하면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을 품었던 것 같다. 그 후 2년여를 보내면서 그런 마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법륜스님 말씀을 통해, 주변 도반들의 얘기를 통해 조금씩 알아갔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놓아지지 않아 망설이던 백일출가였다. 마침내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용기를 내 신청했다.

    입방 하루 만에 무너진 나의 마음

      백일출가를 시작한 지 단 하루 만에,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다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만 배를 하면서부터였을까? 어쩌면 입방하는 날 지급받은 법복을 개면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샘솟았고, 그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짜를 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생각보다 잘하는구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자는 것에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구나, 일요일 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그래도 잘 따라가는구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행자 생활을 참 편안해하는구나, 이런 발견들 속에서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백일이 지나자 나는 회향을 택했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여행팀 일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난 정말 문경생활을 즐겁게 했다. “자장면이 아무리 먹고 싶어도 짬뽕도 잘 넘어간다”는 법사님의 말씀은 정말 틀린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먹는 거 그게 뭐라고

      즐거운 문경생활에서 나는 참 야무지게 먹었다. 전쟁 같은 공양시간, 많이 먹는다고 싫어하진 않을까 눈치를 보면서도 최선을 다해 많이 먹었다. 백일출가 스태프가 가장 안쓰러울 때가 공양할 때였다. 스태프들은 행자들이 한바탕 쓸어가고 나서야 공양방에 들어올 때가 많았는데, 스태프의 발우에 담긴 소박한 양의 음식을 보면서 백일이 지나고 이곳에 남더라도 난 절대 백일출가 스태프는 못 하겠다 싶었다. 그랬으면서 지금 34기 백일출가 스태프로 있는 우리 기수 행자님을 부러워하는 건 또 무슨 심사인지…. 반장님과 차담을 하면서 나는 얘기했다.“ 때아닌때먹고싶어서, 비닐에든 음식 먹고 싶어서 회향할래요.”반장님은 답하셨다. 먹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말씀이 맞았다. 회향한 날 터미널 앞에서 도반이 사준 샐러드빵. 그거 하나만 정말 맛있었고 이후 지금까지 먹은 것들은 그냥 맛있었다. 진짜 먹는 거 그거 별거 아니었다.

    부모님에 대한 깊은 의지심을 넘어서

      자장면이 먹고 싶어도 짬뽕이 잘만 넘어간다는 법사님의 말씀은 사실 부모님께 자꾸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백일출가 첫날 지급받은 기도포에는“예,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이 적혀 있었는데, 만 배를 하면서 문득 알아졌다. 지금껏 부모님이 뭐라 하시면 무시하거나 반항하기만 했지‘예’한 적이 없구나. 나가면 꼭 그렇게 해야지. 얼핏 효자라도 된 것 같아 보이는 그 생각 이면에 담긴 부모님에 대한 깊은 의지심을 알아차리고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법사님께 질문을 드렸었다. 근데 아무 문제없다고 하셨다. 의지심이 있으면 어떠냐고 되물으셨다. 그 마음 갖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지금도 통장에 아르바이트비가 얼마씩 들어오고 있는지 그리 궁금하지가 않는 건 언제든 돈이 필요하면 부모님께 말하면 되니까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근데 이런 철없는 의지심을 갖고도 나는 지금 손 안 벌리고 잘 살고 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매일같이 되뇌면서도 즐겁게 백일을 보낸 것처럼, 기대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커도 얼마든지 그 마음에 휩쓸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알겠다.

      나를 알고 나니 사라진 원망‘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습니다.’법사님께서 내게 주신 기도문 중 하나다. 난 이 기도문이 참 좋다. 이 기도문 하나 얻은 것만으로도 백일이 하나도 안 아까울 만큼 좋다. 매 순간 나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산다. 내 모든 행동은 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 때문에, 혹은 내가 가진 콤플렉스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책임지고 싶지 않았거나, 내가 가진 콤플렉스가 드러나는 것보다 감춰지는 걸 더 원해서였다는 걸 알았다.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하는 걸 더 원했던 거라는 거. 그래서 정말 세상에는 원망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누굴 원망하겠는가.

    비닐하우스 만들기 일 수행(왼쪽이 글쓴이)

    내게 맞춰준 도반들, 그 고마움

      백일출가를 하는 동안 도반들에게 마음을 많이 열지 못했다. 70일 정도가 지나면서부터는 더 위축되고 마음이 닫혔던 것 같다. 그러다 회향이 가까워질 즈음, 법사님께서 다른 도반에게 주셨던‘내게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이 문득 다가왔다. 내가 내 생각에만 갇혀 있는 동안 도반들은 내게 다 맞춰줬구나. 즐거웠던 백일이 다 그 덕분이었구나.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회향하기 전에 그걸 알게 되어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새로 들어온 34기 행자님들을 바라지하면서 도반들에 대한 마음이 많이 열렸다. 우리 33기 대표를 맡고 계신 행자님이랑 얘기를 나누며 알게 됐다. 나도 대표님만큼 우리 33기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이 소중한 인연이 참 감사하다.

    이런 나도 저런 나라도, 지금이 좋다

      사실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른다. 백일출가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살펴볼 머리도, 끈기도 없다. 그냥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그동안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몸을 움직여 했던 많은 일들이 모두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거, 그게 다 합해져 지금 내 모습을 만들었을 거라는 거,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다. 지금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불편하고, 윗사람이 어렵고, 자꾸만 눈치 보고 잘 보이려 하고, 긴장하고, ‘나’라는 걸 꼭 쥐고 놓지 못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부모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그저 독립을 흉내 내는 수준에 그친다. 그래도 지금이 좋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의 현재가 좋다. 문경에 있을 땐 그토록 나오고 싶어 했으면서 막상 회향해서는 문경을 그리워하고, 그렇게 양손에 쥔 떡을 다 먹으려는 욕심을 놓지 못해 괴로워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나를 알아차리고 바라볼 수 있어서 참 다
    행이다.

    내 힘으로 만들어가는 행복의 길

      입재 수련 때 법사님이 물으셨다.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내 대답은‘좋아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었다. 지금껏 받은 수많은 질문들에 했던 대답 가운데 가장 즉각적이고 확신에 찬 대답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작년 한해를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냈고, 지금도 그렇게 보내고 있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법륜스님을, 여행팀 담당자를, 관악법당 보살님들을 돕는 시간들로 하루의 부분부분을 채워가고 있다. 역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 그래도 꼭 쥔 양손 가운데 하나는 이제 펴서 비워야겠지? 앞으로 내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있는 힘껏 내 행복을 만들어가련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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