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월간정토 9월호] 백일출가, 나에게 찾아온 귀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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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8.11.18 13:58 | 조회 55


    백일출가, 나에게 찾아온 귀한 인연




    백일출가 30기 유애림

    백일출가는 절대 못해 
    학창시절 내내 치열하게 공부하다 교사로 취직해 살던 2013년 가을, 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평화재단 청년포럼의 청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정토회를 알게 돼, 깨달음의장을 다녀오고 문경살이도 하게 됐습니다. 
    문경살이 하며 문수방에서 밥을 먹다가 백일출가는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갈한 깨달음의장이나 나눔의장과는 달리,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모여 짝 안 맞는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고, 세면장에서도 쾨쾨한 식초 냄새가 났습니다. 당시 불국화 행자님께서 백일출가를 꼭 해보라 권유하셧지만, 공무원 신분인 데다 방학이라고 해도 한달 뿐이라 어차피 백일출가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며 마주한 나의 불안함
    이후 정토회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청년포럼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도하며 마음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마음공부를 통해서 내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울증으로 가끔 아픈데다 화를 많이 내시는 아버지, 그 옆에서 불안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릴 적 나는 불안한 아이로 눈치를 많이 봤음을 알게 됐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도 부족하고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보살핌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갖 불만을 가지고 살았고, 세상 사람들을 모두 한심하게 봤습니다. 
    한편으론 옆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았습니다. 그 속에서 허한 마음은 내내 지속됐습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말과 행동으로 나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살았습니다. 쉬고 싶었지만, 선생님을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내 꿈은 육아휴직!’을 외치며, 남편 잘 만나서 편하게 살겠다고 꿈꿨습니다. 남편과 아이, 화목한 가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려고 해도 안 되고 괴로웠습니다. 집착을 내려놓겠다는 기도를 하면서도 ‘부처님 그래도 저는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되뇌었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돌아보며 ‘우리 부모님은 정말 훌륭하시고,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고, 결혼보다 세상에 중요한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머리로는 모두 깨달은 것처럼, 사회 활동도 재미있게 꾸준히 했는데 왠지 모르게 언제부턴가 활기를 잃어가고 힘들었습니다. ‘활동하며 잠 못 자고 몸이 힘들어서 지쳤구나’ 하고 넘겨보려고 해도 그냥 지겨웠습니다. 

    부처님의 땅에서 느낀 자유로움, 인도 성지순례
    그러던 중 2016년 1월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스스로 사회활동가라는 자아인식은 있었지만 불자라는 인식은 거의 없었는데,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를 순례하면서 ‘부처님께서 정말 살아 게셨구나. 지금도 그 상가가 이어지고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이내 ‘부처님처럼 살고 싶다. 부처님의 제자로 살고 싶다. 내가 집착하는 모든 것들은 없어질 감각일 쁜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집착했던 결혼에 대한 집착도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남은 인생을 가장 양심적으로 살자는 생각으로 퇴직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 남는 시간에 했던 청년 활동을 상근 활동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백일출가를 가야 했습니다. 퇴직을 하고 백일출가를 가는 과정에서도 많이 불안했습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었고, ‘이제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발끝부터 불안감이 밀려와서 명상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을 내가 결정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볍고 뿌듯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백일출가로부터의 변화
    백일출가를 상근 활동을 위한 자격증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기에 문경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미래의 상근 활동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재수련을 통해 받은 기도문의 “제가 할 수 있는 것,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든지 배우면서 살겠습니다.”라는 구절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31년 내 인생을 온전히 부정당한 것 같고, 법사님도 밉고, 정토회도 미웠습니다. 포대 자루에 넣어진 채 방망이로 매질을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도문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드니 더 괴롭고 내가 도대체 31년 인생을 어떻게 살았나, 나 잘났다고 잘난 체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은 하나도 모르고 살았다고 느꼈습니다. 
    충격에서 차츰 벗어난 하루하루 깨어있어보기 위해서, 사실을 사실로 보기 위해서, 그리고 내 생각을 내려놓기 위해서 소임에 충실했습니다. 밥하고 농사짓고, 연등도 달고, 시멘트 작업도 하고, 똥거름도 밭에 뿌리고, 예초기도 돌려보고...
    수련원 곳곳의 일을 하며 재미를 느꼈습니다. 펑소 습관을 내려놓고 하얀 도화지처럼 살게 되니 내가 어떤 것에 의지하고 살았는지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화장이 너무 하고 싶고 예쁜 옷들을 입고 싶었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많이 끄달리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또한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에서 아는 사람이 와도 아는 체할 수 없다보니, 내가 그동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그것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는 것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백일이 끝날 무렵의 회향수련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호불호가 명확하던 나는 나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동안 ‘유애림 월드’를 만들고 그 안의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맺고, ‘유애림 월드’의 왕 노릇을 하며 까르르 웃고, 떠들고, 항상 들떠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벽이 허물어졌을 떼의 불안감과 두려움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실은 세상을 모두 적으로 삼고 불안에 바들바들 떨면서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이렇게 불안하게 세상을 살고 있구나. 나라고 할 것이 없고 이 세상이 모두 나인데, 세상에 푹 안겨서 살지 못했구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향 후 다만 기도하는 삶
    그렇게 백일출가 동안 많은 나와 마주하고 이제는 실전! 100일 만에 회향을 하고 집에 갔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뵙고 내가 느낀 감정은 반가움이나 안정감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나에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모님이 무섭고 불안했습니다. ‘내가 백일이나 부모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왔는데 아직도 나는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아직도 부모님의 칭찬에 의지하고 살고 있구나.’ 또 한 번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300배 개인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백일출가 다녀와서 평생 기도하며 살고 싶어졌고, 다만 기도할 뿐이라는 발심이 생겨 기쁩니다. 아직도 불안하고, 세상이 적으로 느껴져 오들오들 떨며 살고 있지만, 매일 아침 그런 나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백일출가는 나와 마주한 여행이었습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슬픈 감정과 불안한 감정이 많이 낯설지만, 이제는 반갑습니다. ‘애림 안녕?’ 가볍게 인사하며 살겠습니다. 지금 여기 이 마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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