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월간정토 2월호] 지난 시간의 나, 그리고 같고도 다른 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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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일출가 | 2019.07.21 11:43 | 조회 74



    김가영 백일출가 32기

    백일 끝에 돌아보는 나의 발자취
      얼마 전 동지 법회에서 유수스님의“우리는 특별한 나를‘나’로 삼는데, 내가 살아온 2017년 한 해의 생활이 부정할 수 없는‘나’다”라는 말씀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부정할 수 없는 나의 2017년은 어떠했나, 백일의 시간은 어떠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지난해 5월에 깨달음의장을 마치고 31기 백일출가에 지원했지만 만 배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여름 명상수련 전체 바라지를 하고 다시 32기 백일출가를 지원해서 마침내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문경에서 보낸 늦은 봄∙여름∙가을∙겨울은 열심히 분별심을 내고 돌이키며 치열하면서도 즐겁게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깨달음의장과 백일출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여기서 배운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하던 나, 그리고 죄의식
      제가 백일출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곳에 가서 멋진 걸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친구들은 부모님이랑 오고 싶다며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습니다. 그런데 저는“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 왔는데, 왜 엄마∙아빠 선물을 사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제 쓸 립스틱만 샀습니다. 그런데 말과 행동은 그렇게 하면서도 밑 마음에는 이렇게 사는 내가‘문제 있다’혹은‘나쁘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부모님께 진짜 감사한 마음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백일출가를 했습니다.


     아도모례원 운력 중 도반과 함께(오른쪽이 글쓴이)

    잊고 있던 가족의 감사함을 통해 찾은 자유
      매일 500배 정진을 하고 법사님들과 함께했던 수련을 통해 저는 그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빵과 과자를 기다리며 설레던 날, 오빠와 전자레인지에 돌린 피자를 들고 눈 내린 마당에 앉아 먹던 날, 가족끼리 가족탕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먹던 날 등 많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내가 그동안 참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구나. 이제는 부모님께 더 받을 것이 없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몇가지 서운한 일을 붙잡고 욕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구나’하고 돌이키게 됐습니다. 또 나눔의장을 하면서 마음에 쌓인 것을 털어낼 만큼 털어내고 나니 비로소 부모님에게 매여있던 마음이 자유로워짐을 느꼈습니다.

    안경을 벗고 비로소 보게 된 주변 사람들
      가장 큰 괴로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주변 사람 살피기를 과제로 삼게 됐습니다. 저는 초반부터 도반들에게 분별심을 많이 냈는데, 언젯적인가 불쾌함에 사로잡혀 도반들이 계율도 안 지키는데 왜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나누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저였기에 하반기 부공양주 소임을 하면서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참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매 순간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별심을 놓치
      면 놓치는 대로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는 대로 내 꼬락서니가 어떤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나밖에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내가 한 배려가 상대에게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내가 살피려고 해도 아픈 도반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아서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남을 살핀다는 것은 많은 애정과 세심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나를 살펴주는 도반과 스태프들에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놓치는 부분을 채워주고 분별심에 사로잡혀 상처 주는 말을 해도 이해하고 마음을 받아주던 도반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 상태를 살피고 잘 쓰일 수 있도록 적절한 일거리를 만들어주던 스태프들에게도 참 감사했습니다.


    ▲  공양 준비 중(가운데가 글쓴이)

    외로웠던 선택의 부담감을 벗고 새로운 출발에 나서다
      백일출가를 하면서‘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라는 마인드로 도전은 하되 가볍게 살려고 했고, 그렇게 살아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향 수련을 통해 내가 마음대로 살기는 했지만, 선택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무겁고 부담감이 컸음을 느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는데 왜 이럴까? 억압된 무엇이 있나?’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찾은 결론은 그동안 내가 내린 선택이 지지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학점, 스펙 관리, 대기업 입사도 좋은 삶이겠지만, 그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한다”“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하는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내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외로웠던 거였습니다. 그때마다 법륜스님의 책과 법문을 찾아보며‘어떤 선택을 해도 좋다, 그것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된다’‘인생의 주인이 돼라’같은 말씀으로 위안 삼으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주는 사람은 스님뿐이었고, 결국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스님 말씀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고 확신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이들의 존재에 큰 용기와 위안을 얻었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내 삶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며 사는 삶이 진짜 가능하구나.’책과 미디어에서의 공허한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분들의 삶을 내눈으로 확인하고 함께 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에 대한 확신
    백일출가를 마친 지금, 내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매 순간순간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물러서는 마음이 들고, 맘모스빵이 남아 있기를 바랄 만큼 후식에 껄떡거리고, 쥐약이 쥐약인 줄 직접 먹어보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리석은 범부 중생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삶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량 투어(둘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글쓴이)
    
    무엇보다 내 꼬락서니가 어떻다는 걸 알았고, 넘어지면 넘어진 줄 알고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면 그뿐이라는 것, 그리고 부족한 나여도 잘 쓰일 수 있는 곳(평화통일과 환경보호, 난민구호 활동 등)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흔들려도 나를 잡아주는, 삶으로 이 가르침이 옳은 길임을 보여주는 지도법사님을 비롯한 법사님들과, 이 길을 함께 가는 도반들이 있기에 이제는 혼자가 아님을 압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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